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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지금 SNS에서는]아버지의 오토바이

입력 2013-02-19 03:00업데이트 2013-02-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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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내 아이. 인터넷과 페이스북 등에 많이 올라오는 고민들 중 하나가 ‘우리 아이 언제 철들까요’가 아닐까요. 최근 SNS와 인터넷에서는 부모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철든 자녀의 글이 올라와 널리 회자됐습니다. 지난해 수능시험을 본 한 수험생이 시험 당일 본 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 쓴 내용입니다.

집 분위기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지. 부모님은 맞벌이라 밤늦게 돌아오셨고 나도 언제나 학원이나 독서실 다녀와서 부모님 주무시는 것만 보고 잤어.

수능날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어찌 됐는지 지각하게 생긴 거야. 다급하게 아버지한테 전화했지. “정류장인데 지각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울먹거리자 아버지가 딱 전화를 끊더라. 아무리 관심 없고 무뚝뚝해도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지각으로 수능 못 본다는 절망감보다 오히려 ‘아버지가 이럴 줄 몰랐다’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어. 근데 한 5분 지나 멀리서 오토바이 하나가 오더라.

아버지가 배달일도 하셔서 오토바이가 있어. 그거 타고 오신 거야. 아버지가 다급하게 빨리 타래. 신갈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5분 전에 도착했어.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보면서 비웃더라. 정말 배달집 오토바이 그 자체였거든. 화가 났지. 근데 아버지는 신경도 안 쓰더라.

난 내리자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다녀올게요” 하고 그냥 갔어. 시험 보는 내내 아버지 생각은 나지도 않았어. 시험에만 집중했지.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나가는데 교문 앞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라. “가자”고 하시는데 난 싫었지.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었거든….

내가 미쳤던 건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 배달 오토바이를 옆에 두고 친구들 앞에서 가자고 하는 아버지가 쪽팔렸거든. 그 생각뿐이었어. 친구들이 눈에서 멀어질 때쯤 아버지가 친구들과 함께 가라고 했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에서 봐요”라는 말만 하고 냅다 뛰었지.

그날 밤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는데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어. 컴퓨터를 꺼버리고 자는 척했지. 다음 날 일어나니까 아버지는 일 나가시고 밥 먹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이 기억나. 아버지가 어제 내 전화를 받고 급해서 운동화도 아닌 슬리퍼 신고 가셨다고…. 그 추운 날씨에…. 난 그런 것도 못 봤지. 아버지가 날 데려다주시고 한번 안고 싶으셨대. 근데 그럴 틈도 없이 아들 녀석은 빨리 가더라며…. 혹시 시험 보다 갑자기 아파 쓰러져 병원에 가야 하면 어쩌나 싶어서 시험 끝날 때까지 기다리셨대. 내가 애들하고 웃으며 나오는 걸 보고 그제야 안심하셨고, 친구들하고 같이 가는 내가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뒤에서 보고 계셨대.

그날 밤 집에 오셔서 어머니한테 그러셨다는 거야. 내 아들 잘 큰 것 같다고…. 친구들과 함께 가는데 내가 가장 키가 컸는데 제일 멋져 보였다고….

아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새 쑥쑥 크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그 옛날 내가 그랬듯이….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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