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날 키운 건 치열한 살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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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8일 07시 00분


‘거미손’ 이운재가 17일 기자회견에서 선수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운재가 17년 간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슛을 막았던 
자신의 두 손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거미손’ 이운재가 17일 기자회견에서 선수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운재가 17년 간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슛을 막았던 자신의 두 손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 현역은퇴 기자회견 “이젠 말할 수 있다”

“선수시절 내내 살 때문에 스스로 채찍질
오르는 것 보다 정상 지키는 게 어렵더라”


‘거미손’ 이운재(39)는 17일 서울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K리그 유일의 골키퍼 MVP(최우수선수),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이상 출전) 가입 등 숱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든든한 성원”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 축구 최고의 수문장인 그는 1994미국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한일월드컵과 2006독일월드컵, 2010남아공월드컵 등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꿈의 무대’를 4차례나 경험한 베테랑이다. A매치 132경기에 출격해 114실점만 허용, 0점대 방어율(0.86골)을 기록한 그도 선수 신분으로 맞은 마지막 날에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영광을 만든 건 8할이 살?

때론 아픔도 있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성공적인 삶. 물론 마흔을 목전에 둔 최근까지도 뛸 수 있었던 한 가지 비결이 있었다. 바로 ‘체중’이다. 이제야 웃고 말할 수 있어도 그는 치열했던 ‘살과의 전쟁’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했다고 털어놨다.

언젠가부터 급격히 불어난 체중에 주변에서는 “축구선수가 제대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며 손가락질을 했고, 현역 말미를 보낸 전남에서는 아예 “살 빼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항상 체중 탓에 울고 웃었다. 늘 살찌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꾸준히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에) 100% 만족했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노력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늘 살이 화두가 되다보니, 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물만 먹고 살이 찐다? 그건 불가능하다(웃음). 당분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지도자를 하면서 살이 빠지면 그럼 또 뭐라 할 것 아니냐.”

이운재는 후배들에게 따스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것보다 정상을 지켜내는 게 훨씬 어렵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 장갑을 물려받은 후배 정성룡(수원)에게도 일찌감치 이 말을 건넸다. 모두 경험에서 우러난 메시지였다. 본인조차 예상할 수 없었던 2002년, ‘해도 해도 안 되면 태극마크를 반납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이운재는 1인자가 됐다. 그리고 실점뿐 아니라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늘 앞을 보며 묵묵히 가면 노력의 빛을 보기 마련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꼭 돌아온다는 걸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공격수가 골 넣는 매력이 있다면 우린 골을 막는 희열이 있다. 넣는 사람도, 막는 자도 필요하다.”

후배 정성룡(수원)이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떠나는 선배 이운재(오른쪽)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박화용 기자
후배 정성룡(수원)이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떠나는 선배 이운재(오른쪽)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박화용 기자


남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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