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만인 무상교육, 대안은 없나]<中>호주 보육제도로 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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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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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0~2세 22%만 어린이집 이용… 부모들 사설육아 내몰려

지난달 말 찾은 호주 시드니의 포섬스 코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도 보육시설 이용 시 보육료를 정부가 지원해준다. 이 때문에 보육시설 이용자와 이용료가 크게 늘면서 정부 재정 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시드니=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지난달 말 찾은 호주 시드니의 포섬스 코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도 보육시설 이용 시 보육료를 정부가 지원해준다. 이 때문에 보육시설 이용자와 이용료가 크게 늘면서 정부 재정 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시드니=조진서 기자 cjs@donga.com
《 올해부터 만 0∼2세 영아에 대해 보육시설 이용 시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불필요한 수요를 부추겨 정작 시설 보육이 필요한 가정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바닥나 보육비 지원을 중단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한국과 유사한 정책을 먼저 도입한 호주를 현지 취재해 문제점을 짚어봤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호주를 모범적인 무상보육 국가로 꼽고 있다. 하지만 호주 역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
○ 닮은꼴 호주의 무상보육

지난달 말 찾은 호주 시드니 외곽 노스라이드 어린이집. 이 어린이집은 매년 정원의 2배에 이르는 대기자가 발생한다. 그나마 정부 지침에 따라 직원 자녀나 원주민 가정, 미혼 가정, 장애아, 저소득층 등에 우선권을 주고 나면 일반 가정의 자녀가 집 근처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로라 타바 페트렐리 원장은 “대부분의 부모가 아기를 맡길 어린이집 6, 7곳 이상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만 그것마저 모두 실패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부모에게만 지원해주는 보육료 지원이 무상보육의 축이다.

호주 여성의 취업률은 한국의 2배가량인 58%에 이르지만 만 0∼2세의 22% 정도만 어린이집을 이용할 정도로 보육시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민간기업이 보육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극히 꺼린다.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빈자리를 찾지 못한 가정은 하는 수 없이 사설 놀이방을 찾거나 육아도우미, 조부모 등에게 아이를 맡긴다. 하지만 이런 ‘비공식적’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부모들의 불만이 높다.

정부의 재정지출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보육시설이 보육료를 올려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금 규모도 덩달아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5년 16억 호주달러(약 1조9000억 원)였던 보육료 지원 예산은 올해 45억 호주달러(약 5조3000억 원)로 늘었다.

○ “회계사도 이해 못해”


호주 역시 복잡한 제도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호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육시설 이용 시 보육료 지원과 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양육수당 제도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호주 보육시설 관계자와 영유아 부모는 한결같이 “복잡하다”, “너무 어렵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페트렐리 원장도 “솔직히 우리도 제도가 너무 복잡해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가 최근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영유아 엄마 중 보육비와 양육수당 지원 대상을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8%에 불과했다. 호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복잡한 제도는 부모가 육아 계획을 세우는 것도 힘들게 하고 있다. 시드니에서 2세, 5세, 7세의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맹고 오브라이언 씨(39)는 “보육제도를 잘 몰라 첫 아이를 키울 때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며 “심지어 내 회계사도 잘 이해를 못했다”고 말했다. 오브라이언 씨는 첫 아이를 비용이 많이 드는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후회하고 둘째 아이는 비용이 저렴한 사설 놀이방에 보냈다. 셋째는 아예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키우고 있다고 했다.

호주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 루스 캘리건 보육정책국장은 “호주는 여러 가지 보육지원 정책을 섞어 쓰고 있고 여기에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각각 다른 권한과 책임을 갖고 개입하면서 부모가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가면서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아동수당 도입하자”

현행 제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최근 호주의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는 육아도우미나 친척에게 아이를 맡길 때도 보육비를 지원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호주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보육제도의 혜택을 받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국공립 보육시설 강화와 만 5세 이하 영유아 가정에 보편적 아동수당 지급을 권고했다. 주요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는 영유아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일정액을 직접 지원해 부모가 자율적으로 자녀 교육 형태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호주 유력 일간지인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애덤 크레이턴 기자는 “호주 부모들은 보육시설의 질에 대해선 만족하지만 높은 비용과 시설 부족에 대해 불만이 많다”며 “아이들의 보육은 부모가 잘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육료-수당병행 비판 브레넌 교수 “매년 엄청난 재정 투입 부모 부담 비용도 올라” ▼

세계 주요 국가를 포함해 80여 개국에서는 ‘만 2세 이하 영아는 부모가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각 가정에 현금이나 세금공제 등의 형태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처럼 보육시설 이용에 대한 지원과 저소득층 양육수당 제도를 병행하고 있는 국가는 호주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호주를 한국 무상보육 제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데버러 브레넌 교수(주정부 자문관·사진)는 지난달 말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복잡한 제도 때문에 정작 부모들은 어디서 어떤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매년 보육시설 지원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은 보육시설에 대해 더 많은 감시와 규제를 하고 싶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육시설은 각종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더 많은 시설 투자와 인력 고용을 해야 하고 이로 인해 정부 지원금 외에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경우도 지금은 정부가 규제를 하고 있지만 보육시설 이용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처럼 보육료와 양육수당으로 이원화돼 있는 현행 제도를 ‘아동수당제’로 일원화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2003년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가 아동수당 도입을 요구한 바 있고, 2005년에는 보건사회연구원이 ‘아동수당 제도 단계적 도입’을 제안한 적도 있다. 이듬해에는 여성부에서 이를 검토했으나 무산됐다.

시드니=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무상교육#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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