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세 사람의 한국과 인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4일 03시 00분


한국여자와 결혼… 어머니도 동생도 입양아… 한국어 매력에 푹빠져…

모자부터 심상치 않다.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상징하는 영문자가 모자 정중앙에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제일 친한 친구가 두산 팬이어서 응원하게 됐죠.”

패트릭 버고 씨(35)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시즌에는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러 15번이나 직접 야구장을 찾았다. 지방 경기도 한 경기 보러 갔다 왔단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몇 마디.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을 배우게 될 텐데, 그 때 직접 애를 도와주고 싶어요. 옆에서 보면 아내는 한국문학을 거의 읽지 않거든요.”

호탕하게 웃는 이 남자, 심지어 ‘간까지 큰’ 남자였다.

○ 한국여자와 결혼한 미국 남자

2004년 말. 버고 씨는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대학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를 통해 다른 한국 유학생들도 많이 사귀었다. 대학을 마친 후 휴가 때면 늘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고, 여행길에 매번 친구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들렀다. 그러다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올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머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한국 생활은 기한이 없어졌다.

“이곳에 살고 있고, 이제 내 가족 중 절반이 한국 사람이잖아요.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을 더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제일 처음 읽은 한국 소설책은 김영하 작가의 ‘사진관 살인사건’. 단편소설은 그 길이가 무색할 만큼 수많은 생각거리들을 그에게 던져줬다. 그 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비롯해 김 작가의 작품들을 더 찾아 읽었다. 아직도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김영하다. 다행히 김 작가의 작품들은 다른 작가의 책에 비해 영어로 번역된 것이 많았다.

그의 한국어 독해 실력은 여전히 아동도서를 간신히 읽는 수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충 알아듣지만, 한국어로 문장을 말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평소 한 달에 10권 정도 읽던 책을 줄여가며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처제는 많이 읽어요. 그런데 영어를 잘 못해요. 내가 한국어를 잘하면 문학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어를 잘하면 그만큼 한국 사람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쉬워질 것 같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 한국인?


“저도 절반은 한국 사람이에요.”

앤드루 크렙스바크 씨(27)의 말에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짙은 쌍꺼풀에, 높고 큰 코. 전혀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머니가 2세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셨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가 한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방학 때 한국을 다녀온 친구들이 늘어놓는, 한국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자연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2008년, 대학교 마지막 학년 때 한국문학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식민지, 6·25전쟁 등 한국문학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콘텍스트(배경 또는 맥락)에 놀랐어요. 작가가 포착한 당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책 속에 담겨 있었고,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더라고요.”

2009년 8월 그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수업 시간에 한국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됐던 다방이며 포장마차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1년 동안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올해 3월부터는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했고 1년 반 동안 어학 코스도 다녔지만, 여전히 한글로 책을 읽는 것은 버겁다. 그래도 끝까지 해 볼 생각이다.

“전혀 한국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제 피의 절반은 분명 한국인의 것이죠.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문학이 저에게 더 의미가 있는 거고요.”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도 입양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양된 그의 남동생도 한국을 다녀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추천해 준 것도 그였다.

한국에 머무는 것이 정말 좋다는 그에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것인지를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무엇보다도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학원에서 학생들을 많이 봤는데, 그 분위기가….”

○ 한글로 책 읽는 그녀


마음이 한결 편했다. 한국어로 어떤 질문을 하든 한국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영어로 먼저 보고 ‘이건 정말 원문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한글로 쓰인 책을 보는 거죠. 이 책도 지난번에 영문으로 읽었던 ‘치숙’이 너무 좋아서 샀어요.”

요한나 쿤오시우스 씨(35)가 가방 속에서 ‘레디메이드 인생 외’라는 제목이 적힌 채만식의 단편 모음집을 꺼내며 말했다.

그녀는 독일 출신 아버지와 미국 태생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두 언어를 함께 썼다. 그리고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직접 가 본 프랑스는 미국이나 독일과 너무 달랐다. ‘가까운’ 나라라고 여겼던 이 세 나라도 이렇게 다른데, 정말 ‘먼’ 나라는 얼마나 다를지 궁금해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울 수도 있었지만, 다른 미국인들이 별로 공부하지 않는 어려운 언어라는 사실이 그녀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칠 때쯤, 주말이면 뉴욕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1998년 6월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왔다. 연세대 부설 연세어학당을 다니며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녀는 지금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일단 저는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또 제가 사는 나라의 문학을 읽어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읽었던 한국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와 김동인의 ‘감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국문학을 가르치던 수업에서 한글로 정말 힘들게 읽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단어를 다 사전에서 찾아가면서 봤다.

그녀의 영향으로 미국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의 어머니도 5년 전부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있다. “어머니 동료 선생님 한 분도 어머니가 건네준 자료들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수업 교재로 썼는데, 한 재미동포 학생의 부모님이 그 선생님한테 메일을 보냈대요. 한국문학을 가르쳐줘서 감사하다고요.”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한국문학#왕립아시아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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