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의 ‘윗선’으로 지목된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내가 ‘몸통’이니 나에게 책임을 물어 달라”고 주장한 뒤 또 다른 ‘윗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제기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히려 장 전 주무관 주장의 신빙성을 더 부각시켜 주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 돈 전달 의혹은 일부 사실로
장 전 주무관은 자신에게 ‘입막음용’으로 세 차례 돈이 전달됐다고 폭로했다. 2010년 8월 30일 구속영장 기각 직후 고용노동부 간부로부터 4000만 원, 지난해 4월 항소심 직후 장석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이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통해 줬다는 5000만 원, 지난해 8월 이 전 비서관이 건넸다는 2000만 원 등 모두 1억10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이 전 비서관은 자신이 2000만 원을 줬다고 시인했다. 이 전 비서관은 ‘선의’였다고 주장했지만 주목할 점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장 전 주무관이 폭로한 나머지 2건의 입막음 의혹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가운데 장 비서관이 5000만 원을 마련해 줬다는 의혹이 특히 민감한 상황이다. 중간 돈 전달자로 지목된 류 전 관리관은 돈 전달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돈 출처는 확실히 청와대는 아니다. 장 전 주무관이 너무 어려워해서 개인적으로 도와주려고 한 일”이라며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했다. 장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의 얼굴도 모른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류 전 관리관과 함께 검찰 조사를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장 비서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면 증거인멸 과정에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폭로는 사실이 되는 셈이다.
○ 진짜 ‘몸통’ 찾을 수 있을까?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 태도를 두고 검찰의 재수사가 의혹을 모두 해소하는 수준이 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때 이른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전 비서관은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증거인멸 지시 또는 조율 의혹을 부인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이상 검찰 조사를 받더라도 새로운 진술을 받아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 전 비서관이 ‘몸통’이라는 주장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근무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앞세워 견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세를 부렸다고 전했다. 현재 국무총리실 고위관계자로 있는 당시 청와대 비서관과 드잡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다. 이 전 비서관의 ‘윗선’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과는 세 다툼을 벌일 정도였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 검찰의 재수사 의지는 강해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한 만큼 2010년 수사 때와는 다른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장 전 주무관과 함께 20일 검찰 조사에 입회한 이재화 변호사는 “검찰이 실체를 밝히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검찰로선 이 전 비서관과 그의 증거인멸 지시를 전달한 것으로 거론된 최종석 전 대통령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 간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장 전 주무관의 폭로도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이슈털어주는 남자’는 이날 청와대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라며 장 전 주무관이 녹음한 3개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최 전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민정(민정수설식)에서 나오는 재판기록 검토 다 끝냈고” “민정(민정수석실) 쪽하고도 계속 (재판을) 모니터링하고 그랬고” 등 민정수석실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말을 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선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4·11총선으로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특검이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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