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김정은式 정치’ 첫 시험대… 장례식 활용술에 성패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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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PR 기회 맞아 ‘지도자 포장’ 주목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은 그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국정 장악력과 리더십, 카리스마, 선전능력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통치력 확립에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따라 장차 그의 홀로서기 여부도 가늠할 수 있다.

29일까지인 애도 기간이 끝난 뒤 북한 매체들이 ‘추모 행사 뒤에 숨은 이야기’의 형식으로 본격적인 김정은 선전을 쏟아낼 때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19일 김정일 사망 발표 후 21일 현재까지 사흘만 놓고 본다면 정은의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일 장례가 비교적 무난하게 치러지고는 있지만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은 전혀 없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장례 의전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낮 12시에 특별방송을 통해 사망 사실을 알리고 부검 결과까지 공개한 점,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간부들의 참배를 시작한 점, 웃는 표정의 영정을 공개하고 외부 조문단을 사절하겠다고 밝힌 점을 포함해 전국적인 애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와 똑같다.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은 직접 모든 장례 절차를 챙기고 세심하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을 대성산혁명열사릉이나 김일성광장에 안치하는 게 좋겠다는 부하들의 의견을 거절하고 주석궁을 빈소로 꾸린 뒤 시신을 영구 보존토록 한 것, 엄숙한 표정의 영정을 웃는 표정으로 바꾸게 한 것, 애도 기간을 열흘로 정한 것, 추도가를 바꾸게 한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정일은 여러 가지 정치적 효과를 챙겼다. 김일성 신격화로 자신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장례에 ‘영생’이라는 코드를 덧입혀 이후 자신의 통치과정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또 김일성의 업적을 잇고 발전시키는 데 자신만 한 효자와 충신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동시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관철시킴으로써 자신의 비상함과 능력, 카리스마를 선전하는 계기로도 삼았다.

김정일은 장례가 끝난 뒤에도 ‘3년 상’ ‘유훈통치’ ‘주석직 폐지’ 등 예상을 뛰어넘는 독창적 정치 행보로 김일성 사망 이후 자칫 흔들릴 뻔하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을 확고히 장악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 자신을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포장할 수 있는 행보를 거의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이 빈소에서 차례로 고위 간부들을 맞아 ‘충성서약’을 받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정도다. 고위 간부들이 자신 앞에 깍듯이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앞으로도 ‘김정일의 영생과 유훈통치’ ‘3년 상’ 같은 ‘따라쟁이’ 리더십을 보일 경우 가뜩이나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

물론 김정은도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장례 매뉴얼을 뛰어넘는 파격 행보를 보일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애도 기간이 끝난 뒤 직접 TV에 출연해 감사를 표명하는 방안도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일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것이다. 개성과 카리스마가 있는 김정은식 리더십을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각인시켜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는가 하는 것이 김정은이 직면한 숙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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