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전남 장성 편백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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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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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머무는 숲,행복의 향 온몸 휘감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꽃이 핀 것을 안다. 윤동주 시인은 ‘나무가 춤을 추면/바람이 불고,/나무가 잠잠하면/바람도 자오’라고 노래했다. 나무가 여린 바람을 부르고, 나무 품에서 바람이 새근새근 잠든다. 그렇다. 나무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을 품는다. 별빛과 달빛을 버무려 향기를 내뿜고, 함박눈과 빗물을 녹여 생명수를 콸콸 솟게 한다. 메마른 대지에 꽃을 피우고, 목마른 생명들에게 단물을 준다. 그렇다. 태초에 나무가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천 년을 하루같이 산다. 눈 내린 장성 편백나무 숲.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잘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꽃이 핀 것을 안다. 윤동주 시인은 ‘나무가 춤을 추면/바람이 불고,/나무가 잠잠하면/바람도 자오’라고 노래했다. 나무가 여린 바람을 부르고, 나무 품에서 바람이 새근새근 잠든다. 그렇다. 나무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을 품는다. 별빛과 달빛을 버무려 향기를 내뿜고, 함박눈과 빗물을 녹여 생명수를 콸콸 솟게 한다. 메마른 대지에 꽃을 피우고, 목마른 생명들에게 단물을 준다. 그렇다. 태초에 나무가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천 년을 하루같이 산다. 눈 내린 장성 편백나무 숲.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나무학교’ 전문》

장성 편백나무 숲에 눈이 내렸다. 밤새 포슬포슬 복스럽게 내렸다. 편백나무 숲 눈은 포근하고 넉넉하다. 초가지붕에 쌓이는 눈 이불처럼 둥글고 훈훈하다. 편백나무는 이마에 눈을 잔뜩 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꼿꼿하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한 점 허리가 굽혀지지 않는다. 푸른 바늘잎 머리와 하얀 눈 모자가 정갈하게 어울린다.

겨울 편백나무 숲은 고요하다. 공기는 서늘하고 달다. 숲 속에 은은하고 향긋한 냄새가 가득하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향기)의 왕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란 뜻의 ‘피톤(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사이드(-cide)’가 합쳐진 말이다. 식물이 병원균이나 해충, 곰팡이를 막기 위해 내뿜는 물질이다. 1943년 러시아 출신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 밝혀냈다.

피톤치드는 사람에게 무척 이롭다. 숲 속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피톤치드 덕분이다. 스트레스가 스르르 사라진다. 아이들 아토피도 눈에 띄게 가라앉는다. 혈압이 낮아지고, 천식에도 효과가 있다. 편백나무로 지은 집은 모기 파리 등 해충이 꾀지 않는다.

피톤치드는 잎이 넓적한 활엽수보다 바늘잎 침엽수에 훨씬 많다. 침엽수 중에서도 편백나무가 단연 으뜸이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보다 훨씬 많다. 겨울 편백나무가 100g당 5.2mL(여름 4.8mL)를 내뿜는다면, 소나무 1.7mL(여름 1.3mL), 전나무 2.9mL(여름 3.3mL), 잣나무 1.6mL(여름 2.1mL)에 불과하다. 구상나무 3.9mL(여름 4.8mL)와 삼나무 3.6mL(여름 4.0mL)가 그나마 편백나무와 비교할 수 있을 뿐이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오후 2시가 그 절정이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이 시간에 가장 많다. 지난해 장성 편백나무숲을 찾은 사람은 모두 7만여 명. 올해는 그 배가 넘는 15만여 명이 찾았다. 숲에 들면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온다. 고요한 머무름 속에 행복이 있다. 장성 편백나무 숲은 편백나무(485ha)와 삼나무(148ha)가 섞여 있다. 편백나무는 잎 끝이 뭉툭한 마름모꼴, 삼나무는 뾰족한 바늘잎이다. 편백(扁柏)의 ‘扁(편)’자는 ‘납작하고 작다’는 뜻. ‘잎이 납작한 측백나무’가 곧 편백인 것이다. 편백과 삼나무는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전혀 피가 섞이지 않았다. 편백나무는 측백나뭇과이고, 삼나무는 메타세쿼이아와 같은 낙우송과이다.

축령산 일대는 온통 편백나무 삼나무로 빽빽하다. 키 20∼30m에 쭉쭉 빵빵하게 잘도 자랐다. 총 면적은 779ha(약 235만 평)에 이른다. 이 중 국유림이 240ha, 사유림이 539ha이다. 인근 산들에도 20∼30년 된 편백나무가 많다. 임종국 선생의 영향을 받아 개인 소유주들이 너도나도 따라 심었기 때문이다.

눈 내린 편백나무 숲을 걷는다. 키가 자꾸 낮아진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내 몸속의 역겨운 쇠냄새가 가셔진다. 시멘트 냄새와 휘발유 냄새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나무는 숲의 아들, 인간은 대지의 아들. 둘은 한 가지에 난 잎이다. 형제다. 나무는 눈을 피하지 않고 그냥 온몸으로 묵묵히 뒤집어쓴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그 고요. 그 부동성. 그 머무름. 그 평화. 그 조용함….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장성 편백나무 숲을 만들고 지킨 두 사람▼

“나무 심는 게 나라 사랑” 생전 20년 동안 253만 그루 심어
■ ‘숲의 아버지’ 임종국 선생



춘원 임종국(春園 林種國) 선생(사진·1915∼1987)은 장성 편백나무 숲의 아버지이다. 그는 20년 동안(1956∼1976) 전남 장성군 축령산 자락 569ha(170여만 평)에 253만여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었다.

그는 원래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1956년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 야산에서 쭉쭉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보게 됐다. 그것은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었다. 임 선생은 이 숲을 보자마자 )“바로 이것이다”라며 무릎을 쳤다.

그는 그해 봄 삼나무 묘목 5000주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 그리고 축령산 일대 헐벗은 땅 100ha를 사들여 그 묘목들을 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먹고살 것도 없는 판에 저 사람 미친 것 아니냐?”며 수군댔다. 임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나무만 심을 뿐이었다.

1968년, 1969년 2년에 걸쳐 큰 가뭄이 들었다. 나무들이 타죽어 갔다. 임 선생과 그 가족들은 물지게를 지고 비탈을 오르내리며 물을 주었다. 밤낮이 따로 없었다. 어깨가 피투성이가 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도 그의 지극정성에 감동했다. 그의 뒤를 따라 물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하나둘 다시 살아났다.

임 선생은 점점 더 넓은 땅에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게 없었다. 처음엔 논밭을 팔았다. 나중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버렸다. 그리고 가족들과 산속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그래도 끝내는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임종국 선생이 잠든 편백나무숲 느티나무.
임종국 선생이 잠든 편백나무숲 느티나무.
1980년 임 선생은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빈손이었다. 그가 심었던 나무들은 뿔뿔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넘어갔다. 모든 임야가 채권단에 넘어갔다. 1987년 그도 오랜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2002년 산림청은 개인 소유의 편백나무 숲 240ha를 사들였다. 임 선생이 심은 569ha 중 약 42%를 국유화한 것이다. 임 선생은 국립수목원에 있는 ‘숲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이는 임 선생 외에 산림녹화의 박정희 전 대통령, 토종나무 씨앗을 수집한 김이만 박사, 현사시나무의 현신규 박사,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한 민병갈 선생 등 4명이다.

임 선생은 마지막 유언도 나무 얘기였다.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게 나라 사랑하는 길이다.” 그는 축령산 편백나무숲 한가운데 느티나무 밑에 누워 있다. 그는 흙이 되고, 나무가 되고, 별이 되었다. 그는 살아서는 편백나무였고, 죽어서는 편백나무 숲이 되었다.

‘그는 그 황무지가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나갈 뿐이었다. 그는 매일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씩을 심었다. 그는 한 해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죽어버렸다. 그러자 그 다음 해는 너도밤나무를 심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말년에는 말하는 것까지 잃어버렸다. 그는 일흔다섯일 때조차 집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나무를 심으러 다녔다. 여든일곱 살 때도 오직 나무를 심었다.’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방황하고 지친 영혼에 쉼터 제공
■‘세심원 지킴이’ 변동해 씨



변동해 씨(사진·57)는 편백나무 숲 한가운데에 편백나무 집을 짓고 산다. 그의 집 이름은 세심원(洗心院). 글자 그대로 ‘마음의 찌든 때를 씻는 곳’이다. 그는 한때 이 집을 지어 놓고 열쇠 100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준 사람이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은 모두 세심원에서 쉬어들 가라’는 것이다.

숙박료나 먹을 것 모두 무료. 독에는 쌀이 가득하고(한 해 1t 소비), 김치 된장 고추장 등 밑반찬도 넉넉했다. 여기에 언제나 뜨끈뜨끈한 황토 방. 누구든 먹고 자고 푹 쉰 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나면 됐다. 모든 비용은 변 씨가 충당했다. 이렇게 1999년부터 10여 년 동안 세심원을 다녀간 사람이 자그마치 수만 명. 맨 처음 열쇠를 받은 100명과 그들과 이래저래 인연이 닿은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것이다.

이제 세심원은 일반인은 받지 않는다. 열쇠도 모두 회수했다. 그 대신 방황하는 청소년이나 심신이 지친 성직자들에게 문을 열었다. 역시 모든 게 무료다. “상처 입고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이 안쓰럽습니다. 정작 자신들은 쉴 곳이 없어 힘들어하는 종교의 성직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변 씨는 평범한 농고 출신이다. 그는 30년 동안 장성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2005년 봄에 스스로 그만뒀다. 그는 세심원을 10년 동안 혼자 지었다. 매주 토요일 조금씩 땀을 쏟아 1999년 7월 마무리한 것. 거실은 황토 위에 죽염을 깐 뒤 그 위에 또 숯 2t(7cm)을 깔았다. 그리고 그 1cm 위에 편백마루를 놓았다.

“요즘 자기 손으로 집 지을 줄 아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부모 회갑 때 ‘내가 지은 밥과 술’ 올리는 사람 얼마나 될까요. 된장 고추장 간장 식초도 우리 세대가 지나면 공장에서 나오는 거 먹을 겁니다. 이게 단절입니다. 몸을 부리지 않고 살면 망합니다. 모두가 장애인이 됩니다.”

그는 8년째 숲 속에 차씨를 뿌리고 다닌다. 지금까지 뿌린 양만 40가마(80kg).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차 보시’다. 세심원엔 시계 달력 텔레비전이 없다. 술 고기 휴대전화는 절대 금물이다. ‘아니 온 듯 가시옵소서’, 세심원에 걸려 있는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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