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유럽 현장을 가다]<상>영국 저탄소사회 변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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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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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은 돈 날리는 일”… 차도를 자전거에 내주다

지난달 28일 오전 영국 런던 화이트홀 거리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런던에서는 교통 혼잡을 피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다.
지난달 28일 오전 영국 런던 화이트홀 거리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런던에서는 교통 혼잡을 피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다.
《2015년 1월 1일부터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및 할당에 관한 법률안’이 2일 국회에 상정됐다. 배출권거래제란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한 후 이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을 사고,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덜 내뿜는 기업은 줄인 만큼 배출권을 팔 수 있는 제도다. 현재 “환경을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과 “산업계를 위축시키는 규제”라는 반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00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는 영국 등 유럽을 취재해 이 제도가 시민, 사회,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영국 런던 치즈웰 거리의 한 사무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가 현금처럼 거래되고 있었다. 거래 게시판에 온실가스 거래물량 9개가 나오자 경매가 시작됐다. 온실가스 t당 10.36유로(약 1만5954원)에 낙찰됐다. 이곳은 런던 배출권거래소.

영국을 포함한 유럽 27개국은 2005년부터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를 도입했다. 거래소는 기업 간 온실가스 매매를 중계하는 곳. 하루 평균 3만 건의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이뤄지는 온실가스 거래만 보다 보니 배출권거래제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리바 앤더슨 정책담당관은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이 구체적 수치와 지표로 드러나면서 막연하게 느끼던 온실가스 문제가 피부로 와 닿게 됐다”며 “거리를 둘러보라”고 조언했다.

○ ‘자전거 천국’이 된 런던


28일 오전 8시 런던의 상징 ‘빅벤’이 보이는 화이트홀 거리. 차량과 함께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들은 한국처럼 도로 옆 자전거전용도로로 달리지 않고 일반도로를 자동차와 함께 달렸다. 웨스트미니스터 다리 앞에서 만난 레이철 애시 씨(29·여·공무원)도 자전거로 출근 중이었다.

애시 씨가 탄 자전거 양옆으로 버스와 택시가 달렸지만 알아서 자전거를 피해줬다. 애시 씨는 “자전거로 교통 혼잡도 피하고 온실가스도 줄어드니 일석이조”라며 “집 창문도 에너지 손실이 적은 이중창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스티브 영 씨는 “2년 전부터 자전거가 많아졌다”며 “도로가 좁고 곡선이 많아 차들이 저속으로 달려 자전거를 타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내 곳곳에는 자전거대여소도 설치돼 있었다. 런던 시 교통국은 지난해부터 런던 중심가(44km²·약 1331만 평)에 자전거 총 6000대를 설치했다. 모바일앱을 통해 자전거 위치를 확인해 30분간 공짜로 타고 반납하면 된다.

○ 골목마다 전기차-하이브리드차

골목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날 영국 외교부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22대 중 6대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대영박물관이 있는 그레이트러셀 거리 골목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전기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1km당 이산화탄소를 100g 이하로 배출하는 자동차는 런던 진입 시 내야 하는 혼잡통행료 10파운드(약 1만7910원)가 면제된다. 보통 가솔린 차량은 1km 주행하면 이산화탄소가 150g 나온다.

저탄소 사회로의 체질 개선 작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런던 외곽 퀸엘리자베스 올림픽파크에서도 볼 수 있었다. 26일 오전 찾은 공원 용지 2.5km²(약 75만6000평)에는 모든 공사가 친환경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당초 공장지대로 토양오염이 심각했다. 런던올림픽조달청(ODA)은 약 200만 t의 흙을 파내 거대한 자석으로 금속물질을 뽑아낸 후 물로 씻어 화학물질을 제거했다. 또 각종 경기장은 폐자재를 80% 이상 재활용해 건설하고 있다. 주차장 용지도 없었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모든 경기입장권에 당일 런던 대중교통 이용권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 온실가스가 1990년(연 7억8000만 t) 대비 26.9%(2009년 기준)로 감소했다. 주한 영국대사관 김지석 기후변화담당관은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 영국 사회 전체가 저탄소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반도 온실가스 농도 지구 평균 웃돈다▼

“우리 동네는 저탄소”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뉴옥스퍼드 거리에 “미드타운(Mid Town·지자체 이름)을 탄소중립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영국에서는 저탄소 친환경을 지자체 브랜드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동네는 저탄소”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뉴옥스퍼드 거리에 “미드타운(Mid Town·지자체 이름)을 탄소중립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영국에서는 저탄소 친환경을 지자체 브랜드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각종 피해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7월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역 일대가 침수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서 산사태를 일어나 11명이 사망했다. 2월 동해안에 쏟아진 ‘눈 폭탄’으로 강원 강릉과 동해, 삼척 등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등 대규모 피해가 속출했다. 지난해 여름 내내 35도 내외의 폭염이 지속돼 노인 사망이 속출했다.

극한기후의 원인은 온실가스 증가로 한반도, 나아가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가 증가하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한다. 공기 중 수증기의 수렴대가 바뀌고 대기의 순환이 불안정해진다.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찬 공기를 남쪽으로 밀어내 북반구 지역에 이상저온과 폭설이 유발된다.

더 큰 문제는 지구 평균보다 한반도의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진다는 점.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 대기에서 온실가스를 만드는 물질인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농도는 2009년보다 상승했다. 지난해 이산화탄소의 연평균 농도는 394.5ppm으로 2009년(392.5ppm)보다 2.0ppm 높아졌다. 메탄 연평균 농도도 2009년 1906ppb에서 2010년 1914ppb로 8ppb 증가했다. 아산화질소는 같은 기간 322.6ppb에서 325.2ppb로 올라갔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의 지구 평균 농도는 386.8ppm, 메탄 1803ppb, 아산화질소 322.5ppb. 한국의 온실가스 문제가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10년대(1912∼1919년) 평균 12.1도였던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2000년대(2000∼2008년) 들어 13.7도로 1.6도 높아졌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지난해 기준으로 12.7도였던 한반도 연평균 기온이 향후 80년간 4.1도 상승하게 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면 기후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기후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바뀐다”며 “이 경우 과거 기상관측 기록을 기초해 만든 재해시설이 무력화된다”고 경고했다.

“온실가스 감축 Save Earth? Save Us!”▼
하원 기후변화위 팀 여 의원

“온실가스를 감축해 ‘지구를 구하자(Save the Earth)’라고 거창하게 설득하지 마세요. ‘우리를 구하는 일(Save Us)’이라고 말해야 사람들이 이해합니다.”

25일 오후 2시 영국 런던 화이트홀 거리에 위치한 의원 사무실에서 영국 하원 에너지기후변화위원회 수장인 팀 여 의원(54)을 만났다. 그는 2005년 영국 의회에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영국에서는 온실가스 거래제 도입 당시 반대가 없었는지.

“왜 없었겠나. 영국 산업계와 경제부처는 규제보다는 기업 육성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심각해 전 사회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이 낮아지는 경제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실제 저탄소시설로 전환하는 등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기업들은 갈수록 생산비가 절감돼 제품 가격이 낮아지는 등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 중국도 시행하지 않는데 굳이 도입해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얘기도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최근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호주는 관련 법안이 최근 통과됐다. 뉴질랜드는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중국도 2015년부터 일부 지역에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2015년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추진하는 한국에 조언을 한다면….

“깨끗한 환경을 만들면 경제도 좋아진다. 유명 기업이 회사 터를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기고 있다. 환경이 좋아지면 각종 기업 유치도 유리해진다. 온실가스 관련 정책을 규제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지구 온난화가 더 심각해지면 인간이 살 곳이 없어진다.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글·사진 런던=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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