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근절운동 1년 반…]낙태반대 ‘아이러니’… 10대 미혼모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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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병원 절반 줄고 비용폭등… 청소년 출산 급증 현실로양육비 등 지원금은 쥐꼬리

신경진(가명·18) 양은 미혼모자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동네 오빠와 사귄 지 3개월 만에 덜컥 임신했다. 피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엔 생리불순인 줄 알았다.

5개월이 지나서야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사정은 딱하지만 낙태수술은 안 한다”고 했다. 병원 세 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낙태를 해 준다는 병원을 찾아갔더니 2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혼자 감당할 액수가 아니었다. 결국 신 양은 미혼모자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집에서는 가출한 것으로 안다.

낙태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상습적으로 불법 낙태 시술을 했다면서 산부인과 병원 3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2월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시술 거부 선언이 이어졌다. 올해 3월에는 보건소가 직접 불법 낙태 시술을 고발했다.

1년 6개월이 지난 요즘,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추정한다. 경기 부천시의 A산부인과 원장은 “이제 공개적으로 낙태 시술을 홍보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산부인과는 가급적 출산을 권한다. 그러나 위험수당을 붙여 비용을 올려 받는 산부인과가 늘었다. 청소년 미혼모가 늘어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현실화됐다. 미혼모 통계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부인과 병원과 미혼모 시설 관계자들은 “낙태 근절 운동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미혼모가 확실히 늘어났다. 특히 10대가 많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대형병원 분만실에서도 미혼모 출산이 늘었다. A종합병원 관계자는 “1년에 2, 3명을 입양기관에 보냈는데 올해는 6개월 만에 2배로 늘었다. 자리가 없다며 입양기관에서 안 받아줄 정도”라고 말했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미혼모 출산이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늘었는데, 특히 청소년 미혼모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초 경기도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미혼모 시설을 묻는 문의가 많으니 전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시설에 대한 설명을 잘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임신 중이거나 출산 직후 미혼모는 아이와 함께 미혼모자시설이나 모자공동시설에 들어갈 수 있다. 두 시설의 입소자는 2009년 848명, 2010년 950명, 2011년 6월 현재 981명으로 늘었다.

사정이 이러니 대기자가 크게 증가했다. 한상순 애란원장은 “입소 문의 전화가 30% 늘었지만 정원이 이미 찼다”고 말했다. 신지영 자모원장은 “20명이 정원인데, 이미 지난해 말 30명으로 늘어나 빈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입양기관도 붐빈다. 홀트아동복지회 관계자는 “매년 위탁보호아동이 560명 정도인데, 지난해 말 700명을 넘어섰다. 올해는 60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낙태는 줄었지만 미혼모 가운데에서 청소년의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 미혼모자시설 입소자의 연령을 보면 19세 이하가 31%로 2009년(26%)보다 5%포인트 늘었다. 다른 연령층은 비중이 줄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청소년 낙태는 불법이다. 산모에게 유전적 질환이 있거나 성폭행 피해 같은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피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후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면 ‘청소년 엄마’와 아이 모두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불임 시술 비용은 지원하면서 낳은 아이는 외면하는 문제점도 있다. 청소년 미혼모는 매달 아동양육비 15만 원, 자립지원촉진수당 10만 원을 받는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 학습비를 추가로 지원받는다. 번듯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청소년 미혼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주거 지원이나 아이 돌봄 같은 서비스도 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유하늘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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