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뮤직] 화제작 KBS ‘탑 밴드’에 투영된 불혹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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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1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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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밴드, 대거 지하연습실로 입성하다
●30~40대는 왜 직장인 밴드에 열광할까?

최근 직장인 밴드(직밴)는 열풍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30~40대들은 밴드활동을 통해 청춘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재도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최근 직장인 밴드(직밴)는 열풍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30~40대들은 밴드활동을 통해 청춘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재도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오랜만에 30대 중반에 접어든 옛 친구를 만났다.

유명 커피브랜드의 관리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직위는 '과장'이란다. 얼굴과 몸매는 왕년 록밴드 시절 그대로다. 2년 만에 만나 나눈 대화 주제는 최근 화제인 KBS '탑 밴드' 이야기였다. 요약하자면 "흥분된다"는 얘기다.

최근 '탑 밴드'를 빼놓고는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힘들다. 아마추어 밴드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아마추어 실력파 밴드들이 대거 참여해 완성도 높은 음악을 보여주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특히 과거에 한번이라도 밴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열정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저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과 함께 말이다.

인터넷 동호회중에 직장인밴드들이 모여 활동하는 사이트가 있다. 가입회원수는 수만 명을 헤아릴 만큼 거대한 모임이다.

KBS '탑 밴드' 담당PD조차도 이 동호회의 회원으로 알려졌다. 1980~90년대 대학생활을 한 사람 가운데 교내 음악서클실을 다니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그런 수많은 30~40들의 열정이 '탑 밴드'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 아마추어 음악인들을 뜨겁게 자극하는 '탑 밴드'

와이셔츠에 검은 구두는 직장인의 만국공통어다. 그 친구는 어깨가 좀 내려앉은 듯 보였다. "스트레스 주는 사람이 많냐"고 물으니 그저 웃기만 한다. 십수 년 전에는 그럴싸한 앨범도 내고 활동도 왕성했지만 '점점 음악과 멀어져 가는 것'을 그저 운명이려니 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음악이 아니라 직장생활에 투신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동호회를 알게 되면서 그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주말에 모여서 밴드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생활도 조금은 안정된 지금은 오히려 20대보다 더 비싼 기타를 사용한다. 간간히 만나는 직장인밴드들 동호회원들끼리 추억을 회상하며 기타를 연주하며 여가생활을 영위중이다.

최근 직장인 밴드 사이의 최대 화제인 KBS ‘탑 밴드’
최근 직장인 밴드 사이의 최대 화제인 KBS ‘탑 밴드’

필자에게도 1990년대 피시통신시절에 인연으로 만나 활동하게 된 여러 음악인들이 있다. '델리스파이스'나 '유앤미 블루'가 그러했었고 그것을 주제로 다루는 짧은 음악스토리도 적잖이 탄생했다. 윤도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영화 '정글스토리', 최근에 많은 언더그라운드 팀들이 찍은 영화, 최근작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란 영화도 마찬가지다.

밴드를 다룬 영화는 대부분 청춘과 고뇌, 사랑을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들이 노래하는 유행가중에 그 시작은 언제나 아마추어리즘에서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밴드란 질풍노도와 같은 성장기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모차르트나 베토벤이었던 음악인은 그 누구도 없다. 모두가 부딪치고 깨어지면서 자신의 길을 정하는 식이다.

천재들의 예술혼은 27살에 절정에 이르기도 한다.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과 같은 천재들이 바로 그 나이에 세상과 등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 사망한 영국음악인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27살이었다.

천재들의 하루는 보통 사람들의 100일에 해당한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들도 나올 정도다. 음악 하는 천재들의 죽음은 너무나 빨랐고 범인들의 일상은 어떻게든 영위되어야 했다.

■ "천재들은 요절했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아직도 꿈을 꾸는가?'라고 물어본다. 처자식이 있기 때문에, 매달 들어가는 돈이 있기 때문에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산다는 '나인투파이브(9to5)' 생활에는 너무 가혹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웃으며 "요즘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반박한다. 세상에는 어찌 보면 이중적이라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가슴 속에는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몇 번이고 자위하지만 치열한 현실에서는 낭만과 꿈을 철저히 숨겨야만 하는 그 숨 막힘도 이제는 일상의 일부분이 됐다는 얘기다.

'탑 밴드' 열풍은 단순히 1등에게 돌아가는 1억이라는 상금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직밴(직장인밴드)들이 연습실에서 한창 어린 선생들에게 소리 나는 악기 하나를 배운다는 것은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다. 고작 방송가에서 내놓은 '탑 밴드'에 출연해보겠다는 치기가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지고지순한 꿈'의 가장 현실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홍대 앞의 인디문화도 어느새 20년을 헤아린다.

힙합클럽이나 댄스클럽이 아니라 록클럽과 초창기 록까페를 다니던 이들도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그 세월이 지나 이제 그들이 갈 곳이 점점 얇아진다. 갈 곳이 줄어드는 것이다. 대체될 지역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상수역 주변과 양화대교를 건너 예술가들과 그들의 친구들은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 시작했다.

'탑 밴드'가 화제를 모은 이유는 30~40대에게는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어떤 그들만의 리그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탑 밴드'에 비춰진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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