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고삐 풀린 무직 청년들 ‘묻지마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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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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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실업자-빈민층, 방화 약탈로 불만 표출
소니 창고도 불타… 내년 런던올림픽 안전 비상

4일 20대 남성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해 6일 시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여느 평화로운 집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밤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시위대는 경찰 차량과 버스에 불을 지르고 기물 파괴를 일삼는 폭도로 변했다. 젊은이들은 가게를 부수고 물건을 훔쳤다.

무엇이 ‘신사의 나라’에서 자란 이들을 돌변하게 만들었을까. 영국 언론은 ‘마인드리스(Mindless·아무 생각 없는) 훌리거니즘’이 이번 폭동을 일으켰다고 분석하고 있다. 훌리건은 1960년대부터 보수당의 긴축재정에 불만을 품고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소외된 실업자와 빈민층을 지칭하는 용어. 이들의 특징은 지속되는 가난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더 잃을 것도, 사회적 규범에 복종할 이유도 없다는 것.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보다 ‘묻지 마 폭력’이나 화풀이에 가깝다. 정권이나 긴축재정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실업률 해소를 요구하는 구호도 보이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도 슬로건도 없다. 정치인이나 정권을 비판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자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폭동에서 정치인들이 제일 행운아”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밑바닥에는 청년실업률 상승과 긴축재정에 따른 복지예산 삭감으로 인한 저소득층과 청년층의 불만이 깔려 있다. 시위가 처음 발생한 토트넘을 비롯해 해크니, 브릭스턴 등은 낙후된 지역으로 인종 대립과 경찰에 대한 반감이 큰 곳으로 알려졌다.

런던 경찰은 8일 “폭도들은 주로 소규모 그룹의 젊은층에 직업이 없는 무직자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 중에는 11세 아이도 있었다. BBC방송은 어린 소녀들도 가담했다고 9일 보도했다. 폭동 발생지역인 런던 크로이던에서 BBC와 만난 두 소녀는 상점에서 약탈한 와인을 마시며 “경찰과 부자들에게 우리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자랑했다. 목격자들은 “젊은이 25∼30명이 후드티(모자가 달린 티셔츠)에 마스크를 쓰고 가게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거나 때려 부쉈다”고 전했다.

방화와 기물파손 외에 많은 청년이 약탈에까지 가담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7일 우드그린에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의류매장인 H&M에서 옷가지를 훔친 젊은이들이 마치 일상적인 쇼핑을 하는 듯 태연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약탈 물품을 여행가방에 챙기거나 훔친 물건을 되파는 사람도 있었다. 또 청년들은 자신들이 약탈할 가게의 상호나 상품 이름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리즈대의 폴 배걸리 교수(사회학)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닌 무엇을 샀느냐가 자신을 결정짓는 시대에 가난으로 많은 걸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원하는 것을 취하며 욕망을 분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폭도들은 트위터와 스마트폰 블랙베리의 메신저 서비스(BBM)를 활용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게릴라처럼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이번 폭동에서는 블랙베리 사용자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BBM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찰의 추적망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폭도들이 약탈한 물품을 자랑하는 사진까지 올리자 경찰은 현장에서 확보한 CCTV 화면을 공개하고 수사에 나섰다.

이번 폭동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소니는 보도 자료를 내고 “런던 북부 엔필드에 있는 물류창고가 불에 타 콤팩트디스크와 DVD 등의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크로이던의 한 대형 가구공장에는 불이 나 인근 건물과 전차로 번졌다. 찰턴과 웨스트햄에서 열릴 예정이던 축구경기는 연기됐다.

폭동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불똥이 2012년 런던 올림픽으로까지 튀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일 폭동이 벌어진 해크니는 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한 주요 올림픽 경기장이 몰려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6.5km 떨어져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동영상=부수고 약탈하고… ‘혼돈의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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