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매몰 인부 1명, 밤샘 구조작업에도 끝내 사망… 또다른 1명도 숨진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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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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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 15시간 ‘눈물의 사투’ 보람없이…

21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상가 리모델링 공사 중 발생한 붕괴사고 현장에서 인부가 매몰된 곳으로 의료진이 들어가 부상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위쪽 사진). 15시간 넘게 갇혔던 이모 씨는 이날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과다 출혈로 인한 심폐정지로 숨졌다.연합뉴스·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1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상가 리모델링 공사 중 발생한 붕괴사고 현장에서 인부가 매몰된 곳으로 의료진이 들어가 부상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위쪽 사진). 15시간 넘게 갇혔던 이모 씨는 이날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과다 출혈로 인한 심폐정지로 숨졌다.연합뉴스·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결단의 순간은 불과 몇 초.

의사는 그의 다리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미 차가워진 몸은 심폐정지에 빠진 상태. 무너진 건물 잔해에 한쪽 다리가 걸려 도저히 몸을 빼낼 수 없는 상황.

“자르시려고요?” 약 5시간 전,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이 씨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던진 말이었다. “오른쪽 다리는 아직 감각이 있어요. 아플 것 같은데….” 이 씨의 말이 귓가에 스쳤다. 의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살려야 한다”

20일 오후 4시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3층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 중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부 이모 씨(58)와 김모 씨(45)가 건물 잔해 속에 매몰됐다. 긴급 출동한 구조대는 잔해 속에서 이 씨를 찾았지만 잔해더미에 깔려 빼내지는 못했다.

건물 더미에 짓눌린 이 씨의 왼쪽 다리가 잔해에 걸려 빼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21일 오전 6시 반경 이미 심폐정지 상태에 빠진 상황. 심폐정지는 생명을 다하기 직전에 몸의 운동신경과 뇌 활동이 함께 멈추는 상태다. 만약 구조가 늦어져 응급치료를 못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다리를 절제하고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현장에 출동한 현윤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환자가 심폐정지에 빠지는 순간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간신히 건물 잔해에서 끄집어낸 이 씨의 몸은 이미 얼음장 같았다. 절제수술에도 피가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미 출혈이 심했다. 남은 오른쪽 다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져 있었다.

21일 오전 6시 반경 이 씨는 긴급히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폐소생술과 수혈이 1시간 넘도록 계속됐다. 오전 7시 44분 의료진은 결국 이 씨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인은 출혈성 쇼크로 인한 심폐정지였다.

○ “아빠 다녀올게”

이 씨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후반의 아들, 아내와 함께 살고 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못한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긴 장마로 자주 일을 나가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 씨의 아들(29)은 “아버지가 사고 당일에도 오전 다섯 시쯤 집을 나섰다”며 “마침 이날 일찍 퇴근해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고 소식을 들었다. 퇴근해서 돌아오시리라 생각했던 아버지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그토록 애를 썼는데…”

양동영 서울강동소방서 인명구조대장은 “사고 직후 공사장 인부 13명 중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이 씨와 김 씨를 수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음파탐지기까지 동원해 찾던 생존자의 목소리는 사고 발생 약 3시간 반이 지난 20일 오후 7시 반경에 들려왔다. 구조대가 두드리는 해머 소리를 듣고 이 씨가 ‘살려 달라’고 외친 것. 하지만 구조는 난항을 거듭했다.

무너진 콘크리트 바닥이 세 겹이나 이 씨와 구조대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한 바닥을 뚫고 나면 또 다른 바닥이 구조대를 가로막았다. 날을 넘겨서야 이 씨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로 구멍을 넓히는 데는 약 5시간이 더 걸렸다.

게다가 이 씨의 다리는 기둥 사이를 이어 천장을 받치는 보에 짓눌려 있었다. 이 씨가 누워 있는 아래쪽을 파내려 했지만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에어백을 동원해 보를 들어내려 했지만 콘크리트 하중이 커 실패했다. 결국 이 씨의 다리를 짓누르는 보를 10cm씩 잘라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가로 세로 1m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은 사람 1명이 들어가면 꽉 찼다. 의료진과 구조대원이 번갈아 좁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이 씨를 구하려 사력을 다했다.

무려 15시간의 사투 끝에 이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양 대장은 “그토록 살리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 씨가 끝내 숨져 안타깝다. 이 씨가 ‘살려 달라’고 외치던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구조작업을 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21일 오후 3시 반경 구조대는 인명구조 탐색견을 동원한 끝에 또 다른 인부 김 씨를 잔해 속에서 발견했다. 6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오후 9시 반경 김 씨를 잔해 속에서 꺼냈지만 김 씨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양 대장이 현장에 출동한 지 꼬박 하루하고도 6시간이 넘어간 때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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