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뒤 한국을 빛낼 100인]25세 여대생 사업가 김가영 씨,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과 ‘대한민국의 미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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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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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가는 길만 가면 미래 꿈꿀 기회 없죠… 도전하세요”

두 사람은 다른 시간을 걸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왼쪽)은 월급쟁이로 시작해 세계적 기업의 대표에 오르며 가난한 조국을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잘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여대생 김가영 씨는 일자리 경쟁 대신 19세 때 창업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함께 길을 걸으며 의기투합했다. 미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없는 길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라고.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두 사람은 다른 시간을 걸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왼쪽)은 월급쟁이로 시작해 세계적 기업의 대표에 오르며 가난한 조국을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잘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여대생 김가영 씨는 일자리 경쟁 대신 19세 때 창업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함께 길을 걸으며 의기투합했다. 미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없는 길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라고.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김가영 씨(25). 어린시절부터 또래와 다른 선택을 했다. 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어른의 눈에 말썽으로 비칠 일을 많이 일으켰다. 인문계 대신 선린인터넷고를 선택했다. 대학에 입학한 2005년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대표가 되어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종업원 18명에 연 매출이 20억 원을 웃돌고 있다.

동아일보가 창간 91주년을 맞아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추천위원들은 이런 도전정신을 높게 샀다. 경제 분야 추천위원 8명이 서슴없이 그를 선택했다.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고 돌파하는 ‘김가영 방식’의 삶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상(像)의 원석을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인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에게 이 ‘문제적 사업가’를 소개했다. 다음 세대에 횃불을 건네는 데 공을 들여온 윤 고문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기회였다. 만남은 지난달 30일 오후 윤 고문의 서울 중구 태평로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이날 만남이 윤 고문 진행의 ‘김가영 인터뷰’로 흘러간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원로 경영인은 청년 같은 호기심과 눈빛으로 이리 묻고 저리 살폈다. 대화의 80%는 김 대표의 대답이 차지했지만 윤 고문은 듣는 것에 만족했다.

윤 고문은 만 19세였던 새내기 여대생이 회사를, 그것도 농산물유통회사를 차린 이유를 궁금해 했다.

김 대표는 2005년 여름 충남으로 농촌활동을 갔다가 재배한 채소를 팔지 못하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발견했다. 사변적으로 접근한 동급생과 달리 그의 선택은 늘 그렇듯 문제를 풀어내는 쪽이었다. “제값 받고 팔아드리겠다”며 채소 유통업을 시작했고 전북 남원 등지에서 재배한 친환경 상추를 대형음식점에 납품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도·소매가가 3배 이상 차이 나는 점에 착안해 ‘연중 균일가에 판다’는 마케팅전략으로 고객을 늘려갔다.

사전 조사를 통해 김 대표의 이력을 파악한 윤 고문은 사업영역이 농업과 연관됐다는 점을 반겼다. 윤 고문은 삽과 호미 대신 엔지니어의 공학적 접근을 통한 농업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한국에도 농업·식품 분야에 글로벌 기업이 탄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착상이었다.

김 대표의 답에 윤 고문은 ‘당찬 물건’을 봤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변화가 느린 농경사회에서는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이 인재였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착실하기만 한 것보다 도전적이고 (재기) 발랄한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자신의 아웃사이더 속성을 평가하는 말이 기성 질서의 정점에 서 있는 윤 고문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과자를 사먹은 뒤 남은 것을 학교에서 팔다가 혼난 이야기를 하면서 늘 ‘별난 아이’로 평가받았다고 했다.

윤 고문은 대화가 진행될수록 김 대표의 남다름의 근원을 궁금해 했고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물었다. “어릴 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벨상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그거 받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네가 돈을 벌어 번듯한 상을 하나 만들어라. 돈을 버는 게 다른 사람 돕는 일이다’라고 가르쳤죠.”

윤 고문은 대화 도중 한쪽 벽에 걸린 격물치지(格物致知) 붓글씨가 담긴 액자를 가리켰다. 지혜를 얻기 위해 사물을 완벽히 뜯어보고 궁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윤 고문의 경영철학이 잘 담겨 있는 경구다. 윤 고문은 젊은 세대, 특히 자녀를 둔 부모에게 격물치지의 자세를 강조했다. 바로 그가 여대생 사업가를 통해 다음 세대에 던지려는 메시지였다.

“인터넷에 지식이 다 있는데, 지식을 외우는 게 길이 될 수는 없어요.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지만 책상 앞에서는 도달하기 어렵죠. 자녀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묻고, 스스로 던진 문제를 풀기 위해 궁리하고 파고드는 기회를 꼭 줘야 합니다. 정답만 갈구하면 지혜는 얻지 못해요.”

윤 고문은 “(부모들은) 김가영 같은 사람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면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앞에서는 스승에게 배우지만 부모님의 그림자를 보며 배우는 게 더 크지. 부모가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해요.”

윤 고문은 매출 규모가 삼성전자보다 엇비슷한 식품회사인 스위스 네슬레(Nestle) 이야기를 꺼냈다. “네 회사를 그렇게 키워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36명으로 1969년 출범한 삼성전자가 18만 명의 거대 기업으로 커가는 과정을 재현해 보라는 권고였다.

김 대표는 흔들림 없이 경영자를 꿈꾸고 있다. “이 사람이 이런 정도의 일을 성공시켜 저 위치에 갔구나. 그렇다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20년 후배들이 갖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 회사를 만들어 도전하는 일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싶어 했다.

이번에는 김 대표가 “지금 20대로 돌아간다면 대기업과 창업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윤 고문이 즉답을 피할 수도 있겠다 싶은 물음이었다. 뜻밖에도 ‘창업의 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20대 땐 너무 어려워서 공부도 못했고 미래를 위해 꿈을 꿀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스펙 쌓기 등 무난한 선택보다는 남이 가지 않은 험로를 선택한 ‘어린 동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렸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면서도 윤 고문은 연방 김 대표의 등을 두드려 주며 대견스러워했다.

▼ 산업화의 어른, 도전하는 ‘어린 동지’에게서 미래를 읽다
金 “아버진 노벨상 받느니 상 만들라 하셨죠”
尹 “김대표 같은 발랄-도전적 인재 늘어나야”


윤 고문은 김 대표를 마주하자 청년 같은 호기심과 눈빛으로 이리 묻고 저리 살폈다. 먼저 만 19세 새내기 여대생이 농산물유통회사를 차린 이유를 궁금해했다.

김 대표는 2005년 여름 농촌활동을 갔다가 재배한 채소를 팔지 못하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보고 “제값 받고 팔아드리겠다”고 결심하면서 유통업을 시작했다. 전북 남원 등지에서 재배한 친환경 상추를 음식점에 납품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도·소매가가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점에 착안해 ‘균일가에 가깝게 판다’는 전략으로 고객을 끌었다.

김 대표의 설명을 듣던 윤 고문은 ‘당찬 물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변화가 느린 농경사회에서는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이 인재였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착실하기만 한 것보다 도전적이고 (재기)발랄한 김가영 같은 사람이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성 질서의 정점에 서 있는 윤 고문이 자신의 아웃사이더 속성에 공감하자 놀라워했다.

윤 고문은 그의 남다름의 뿌리를 궁금해했고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를 물었다. “어릴 때 ‘노벨상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그거 받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네가 돈을 벌어 번듯한 상을 하나 만들어라. 돈을 버는 게 다른 사람 돕는 길이다’라고 가르쳤어요.”

윤 고문은 한쪽 벽에 걸린 ‘격물치지(格物致知)’ 붓글씨가 담긴 액자를 가리켰다. 지혜를 얻기 위해 사물을 뜯어보고 궁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윤 고문은 젊은 세대, 특히 자녀를 둔 부모에게 격물치지의 자세를 당부했다. 그가 여대생 사업가를 통해 다음 세대에 던지는 메시지였다.

“인터넷에 다 있는 지식을 외우는 게 길이 될 수는 없어요.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지만 책상 앞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워요. 자녀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묻고, 스스로 던진 문제를 풀기 위해 궁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게 해야 합니다.”

윤 고문은 “김가영 같은 사람을 어떻게 키워내야 할까”라면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앞에서는 스승에게 배우지만 부모님의 그림자를 보며 배우는 게 더 크지. 부모가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해요.”

윤 고문은 삼성전자보다 엇비슷한 규모의 식품회사인 스위스 네슬레 이야기를 꺼내면서 “네 회사를 그렇게 크게 키워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36명으로 출범한 삼성전자가 18만 명의 거대 기업으로 커가는 과정을 재현해 보라는 권고였다.

김 대표는 “김가영이 이런 정도의 일을 성공시켜 저 위치에 갔구나. 그럼 나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후배들이 갖게 해주고 싶다”고 화답했다. 기업 경영이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싶어 했다.

김 대표가 “지금 20대로 돌아간다면 대기업과 창업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즉답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창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 고문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20대 땐 너무 어려워서 미래를 위해 꿈을 꿀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스펙 쌓기 등 무난한 선택보다는 남이 가지 않은 험로를 선택한 ‘어린 동지’에 대한 찬사였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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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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