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깨사-변신 또 변신!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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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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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론→기계비평→공연예술… 변신 또 변신

사진평론가에서 이미지비평가로, 다시 기계비평가로 비평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퍼포먼스 공연예술까지 펼치는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지하 2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xyZ City’ 사진전 현장에서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사진평론가에서 이미지비평가로, 다시 기계비평가로 비평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퍼포먼스 공연예술까지 펼치는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지하 2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xyZ City’ 사진전 현장에서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터무니없는 공간이었다. 회색빛 콘크리트 속살이 그대로 노출된 벽과 바닥, 천장엔 건물의 핏줄 같은 붉은색 파이프가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조명도 어두컴컴해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고개를 빠끔 내밀고 호기심에 찬 표정을 보이던 커플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문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만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최첨단 대형 쇼핑몰의 풍경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사진평론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49)가 기획한 사진전 ‘xyZ City’ 풍경이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 지하 2층 특별전시장에선 21세기 도시미학을 상징하는 타임스퀘어 건물의 흉측한 속살을 드러낸 ‘ㄷ’자 형태의 어두운 공간에서 사진작가 10명의 사진들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좌우로 즐비한 빌딩 숲 아래 얽히고설킨 철근뿌리를 통째로 드러낸 청계천 재개발 현장. 십자가 불빛의 그물망에 포획된 한국 도시들의 야경. 헬기를 타고 수직 각도에서 찍은 서울 테헤란로의 수평적 풍경. 인공위성 사진으로 재구성한 인천국제공항의 기하학적 구도….

○ 이미지비평가에서 기계비평가로

이 전시가 드러내듯 사진평론가로서 이 교수의 관심은 자연이 아닌 인공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데서 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없지만 인공물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는 더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이유로 그는 인간사회의 기호처럼 떠도는 이미지비평에 주력해왔다. 깻잎머리나 군복의 얼룩무늬, 인공위성 사진까지 다양한 이미지의 역사와 함의를 살피는 글들을 여러 권의 저서로 선보였다.

그러다 2005년 그는 돌연 ‘세계 유일의 기계비평가’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양을 항해하는 대형 선박과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KTX, 대륙을 횡단하는 비행기…. 대부분의 인문학자가 관심을 갖지 않는 근대성의 총아로서 빠르고 거대한 기계를 그는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종횡무진 글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기계가 예술 못지않게 아름답고 파란만장한 감각의 삶을 살아온 이력이 있는 한 그것은 비평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어떤 패러다임이 생겨난 순간 그 패러다임은 곧바로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그 새로움의 생명이 곧바로 자신을 죽이는 바로 그 숨 가쁜 변증법이 기계에 숨어있다. …비평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2006년 출간한 ‘기계비평’ 서문 중에서)

그렇게 숨 가쁜 기계의 변증법을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해 5만9000t짜리 자동차운반선 그랜드머큐리호의 항해에 동승하고, 1만3000쪽에 이르는 KTX의 매뉴얼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항공(KLM) 아카이브실에서 보름 넘게 살다시피 하기도 했다.

○ 비평가에서 퍼포먼스 공연행위자로

‘xyZ City’ 기획 취지의 키워드를 써놓은 벽면 앞에서 노트북으로 집필 중인 이영준 교수. 이 교수는 올 4월 퍼포먼스 공연 ‘조용한 글쓰기’에서 이렇게 자신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해 가는 머릿속 과정 자체를 무대화했다.
‘xyZ City’ 기획 취지의 키워드를 써놓은 벽면 앞에서 노트북으로 집필 중인 이영준 교수. 이 교수는 올 4월 퍼포먼스 공연 ‘조용한 글쓰기’에서 이렇게 자신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해 가는 머릿속 과정 자체를 무대화했다.
예술이 아닌 기계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엉뚱한 발상은 그의 이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진학한 이공계 학생이었다. 대학시절 미술과 사진에 심취해 전공수업과는 담을 쌓고 인문학 강의만 듣다가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국내 대학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접근은 말 그대로 기계적이어서 참기 힘들었죠. 그러나 어느 순간 기계를 기계적으로만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카메라도 기계잖아요.”

이공계 출신인 그에게 기계는 알 수 없는 주술의 언어로 가득 찬 ‘야만의 땅’이 아니라 인문학적 비평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신천지였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발터 베냐민과 속도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논한 폴 비릴리오 같은 선구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도 구체적 기계를 직접 비평의 영역으로 포섭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그를 더 자극했다.

“알랭 드 보통이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를 읽었는데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상비평을 못 벗어나더군요. 제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공항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이런 발상의 자유로움은 비평의 영역 확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올해 4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조용한 글쓰기’라는 독특한 퍼포먼스 공연을 펼쳐보였다. 자신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소리 없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 것.

“글 쓰는 사람들이 독창적인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베끼거나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책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발견한 글을 어떻게 변형하고 새로운 성찰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보여주려는 거였죠.”

이 공연을 기획한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디렉터는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 해외 예술가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교수님이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나는 공연에 이틀간 300석이 거의 꽉 찼다”고 말했다.

비평이 됐건, 공연이 됐건 그가 목표하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비평의 영역을 사진, 이미지, 기계로 확장한 것도 모자라 글쓰기 행위마저 공연으로 만든 이 괴짜 평론가는 씩 웃으며 답했다. “뭐든 솔직하자, 그게 제 모토입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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