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리비아 관계 무슨 일이]카다피 격분 “한국과 외교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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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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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교관 추방’ 전말과 파장

26일 우간다를 찾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왼쪽)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하고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이 의원은 리비아 정부의 국가정보원 직원 추방 조치가 리비아 내 한국 기업의 공사 중단으로 악화
하자 6∼13일 리비아를 찾았지만 카다피 원수를 만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6일 우간다를 찾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왼쪽)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하고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이 의원은 리비아 정부의 국가정보원 직원 추방 조치가 리비아 내 한국 기업의 공사 중단으로 악화 하자 6∼13일 리비아를 찾았지만 카다피 원수를 만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초 국가정보원 소속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직원 A 씨는 리비아 건설공사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현지인 정보원을 접촉했다. 정보에 대한 대가로 이 정보원에게 얼마의 돈을 건넸다.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필 이 장면이 리비아 당국에 사진으로 포착됐다. 리비아에서 A 씨의 정보수집 활동 범위는 건설공사 관련 정보보다는 넓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27일 “A 씨의 북한 정보 및 방위산업 협력 정보 수집 활동을 리비아 당국이 문제 삼았다”며 “리비아와 북한 간의 무기 거래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추방사건 넘어 일파만파로

리비아 당국에 체포된 A 씨는 모처에 구금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리비아 정보당국은 A 씨가 단순한 공사 정보가 아니라 리비아 국가기밀을 캐내려 했던 것으로 보고 이 사실을 시인하라며 A 씨를 계속 추궁했다. 리비아 현지 언론은 “보안 당국이 한국요원을 3개월간 미행한 끝에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은 곧바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게 보고됐다. 카다피 원수는 격분하며 한국과 외교관계를 끊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비아는 급기야 지난달 15일 A 씨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인물)’로 규정해 통보했다. 리비아 당국에 구금된 채 지난달 17일까지 조사를 받은 A 씨는 18일 한국으로 추방됐다. 한국 외교관이 기피인물로 규정돼 추방된 것은 1998년 7월 한국과 러시아의 외교관 맞추방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한 소식통은 “이 문제로 한국이 리비아에서 시공 중인 공사가 모두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또 포스코건설의 지하철 건설, 대우건설과 현대건설의 발전소 건설 발주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리비아경제대표부마저 지난달 23일 돌연 영사업무를 중단했다. 대표부 직원 모두 한국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휴가를 떠난다며 출국해 버렸다.

○ 정부의 ‘조용한 수습’ 노력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달 초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공식 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아랍권에서 최고지도자의 친인척이 중요한 인사로 대접받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리비아로 떠난 이 의원은 카다피 원수를 만나려고 했으나 카다피 원수가 만남을 거부했다. 대신 알바그다디 알마무디 총리를 만났다. 그는 과거 카다피 원수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부정적 보도 내용을 보여주면서 “리비아가 웬만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거의 한국에 주고 있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흥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알마무디 총리를 4차례 만난 끝에 가까스로 한국 기업의 공사를 재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주 정보당국 대표단을 리비아에 파견했다. A 씨의 정보활동이 통상적 정보활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리비아 측은 아직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답을 주기로 한 기한이 됐기 때문에 1, 2일 안에 답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리비아 당국은 현금 수수 장면을 포착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정원 직원이 단순히 공사 정보를 구하려 했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을 믿지 않고 공사 정보를 뛰어넘는 기밀사항을 캐내려 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생긴 지 1개월이 돼서야 정부가 특사를 보내는 등 초기대응이 늦었던 데다 주로 비공식적 ‘물밑 해결’에 매달려 사태를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랍 언론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 사건을 보도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 선교사 체포와 아랍 언론 보도

정부는 16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국정원 직원의 정보활동과 관련해 리비아 정부 당국이 이의를 제기해 이상득 의원이 특사로 파견됐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또 한국 정보당국 대표단이 리비아 정보당국과 협의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협상이 원만히 끝날 수 있도록 국익을 위해 보도자제(엠바고)를 요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리비아에서 8년을 체류한 선교사 구모 씨와 한국인 농장주 전모 씨가 현지 종교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알려졌다. 리비아 당국은 이들을 종교법 위반 문제로 다루고 있으며 국정원 직원의 정보활동 문제와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그러나 26일경부터 트위터를 통해 아랍 언론의 보도 사실이 퍼지면서 국익을 위한 보도자제도 무의미해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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