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기구한 美체스황제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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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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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세계챔프 오른 뒤 잠적
유언장 없이 남긴 23억 화근
친자확인 위해 무덤서 꺼내져

냉전시대 체스 세계챔피언이자 미국의 영웅이면서도 세상을 등졌던 ‘체스 황제’ 보비 피셔(1943∼2008·사진). 그의 시신이 4일 저녁 친자(親子) 확인용 유전자 획득을 위해 무덤에서 파내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6일 전했다. 이날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65km 떨어진 셀포스 마을묘지 그의 무덤에는 경찰, 교구 목사, 검시관 등이 모여 시신을 꺼내 시신 조직 일부를 떼어낸 뒤 다시 묻었다.

발단은 2008년 그가 숨지면서 유언장 없이 남겨놓은 유산 200만 달러(약 23억 원) 때문. 이번 검시(檢屍)는 그의 딸을 키우고 있다는 필리핀 여성이 아이슬란드 법원에 낸 친자확인소송에 대해 지난달 법원이 유전자 검사를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유산상속을 다투고 있는 이는 필리핀 여성 외에, 그와 2004년 결혼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체스협회 회장, 그리고 피셔의 조카 두 명 등이다.

피셔는 1972년 언론이 ‘세기의 시합’이라고 명명한 옛 소련 출신 보리스 스파스키와의 체스 세계챔피언 타이틀전에서 이긴 뒤 체스 무대에서 홀연 사라졌다. 그 후 20년 만인 1992년 피셔는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스파스키와 재대결했지만 이로 인해 미 정부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도망자가 됐다. 보스니아 민족학살로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받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상금을 걸고 체스를 뒀다는 이유였다. 이후 그는 헝가리, 필리핀, 일본 등지를 돌며 떠돌이로 살았다. 9·11테러를 전후해서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많은 팬을 실망시켰다. 그는 2004년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일본에서 억류됐을 때 아이슬란드 정부에 망명을 요청해 2005년 받아들여지자 이후 숨질 때까지 아이슬란드에서 살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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