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치료커녕 동료 죽어간 배 청소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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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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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성-교전악몽 생생하지만 진급하려면 다시 배 타야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난 뒤 생존 장병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한 명도 빠짐없이 정신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제2연평해전 생존 장병들은 제대로 된 정신치료를 받지 못했다.

당시 머리에 파편상을 입었던 갑판장 이해영 원사(46)는 실밥도 뽑지 않은 채 9일 만에 퇴원했다. 그는 침몰 53일 만에 인양된 참수리 357호정에 다시 투입됐다. 생존 장병 10명과 함께 직접 호스를 들고 배 구석구석에 쌓인 개흙을 물로 씻어냈다. 주인 잃은 군복에서 동료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보고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지만 썩는 냄새 속에서 말없이 유품을 거두고 함내를 청소했다. 그는 “썩은 흙 때문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였지만 희생 동료의 유품과 마주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병기장 황창규 상사(36)는 참수리 357호정이 인양되던 날 바지선에서 자신이 탔던 배를 마주했다. 탄약이나 포탄에 문제가 생겨 폭발할 위험이 없는지 챙겨보라는 임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포 소리, 신음소리가 생생히 남아 있는 배를 황 상사는 샅샅이 뒤져야 했다. 황 상사는 “해상에서 인양작업을 진행하며 하룻밤을 꼬박 새웠고 처참한 모습의 배가 올라오는 장면을 다 지켜봤다”고 말했다.

퇴원하거나 전역한 병사들에 대해서도 정신과 진료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의료적 지원은 없었다. 제2연평해전 생존자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전역한 고경락 씨(29)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고 씨는 군대 있을 때 178cm 키에 70∼80kg이던 몸무게가 20kg 이상 빠졌고 감기 등 잔병치레가 늘었다. 이철규 상사(34)는 천둥번개가 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빠진다. 그는 해전 이후 큰 소리만 나면 무섭고 떨린다. 하지만 이런 장애에도 현역 근무자들은 진급을 하기 위해 배를 다시 탈 수밖에 없다. 이 상사는 2007년부터 2년간 천안함을 탔다. 임근수 중사(33)는 천안함 구조작업에도 동원됐던 청해진함에 타고 있다. 전창성 중사(33)는 “배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사격 훈련이나 비상상황 훈련 때마다 떨리지만 진급을 하고 가정을 책임지려면 배를 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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