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잔병으로 산 8년… 몸속 파편보다 마음속 파편이 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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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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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가오는 ‘6월29일’… 생존 20人 고통의 삶

참수리 복제함정에 모인 생존장병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참수리 357호정 안보전시관 개관식에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이 모였다. 교전의 참혹함이 그대로 담긴 복제함정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무관심과 냉대의 상처가 남았다. 왼쪽부터 이희완 대위, 전창성 중사, 권기형 씨, 김장남 상사, 이철규 상사.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참수리 복제함정에 모인 생존장병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참수리 357호정 안보전시관 개관식에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이 모였다. 교전의 참혹함이 그대로 담긴 복제함정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무관심과 냉대의 상처가 남았다. 왼쪽부터 이희완 대위, 전창성 중사, 권기형 씨, 김장남 상사, 이철규 상사.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참수리 357호정 안보전시관 개관식에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이 모였다. 당시 부정장(副艇長)이었던 이희완 대위(34) 등 현역 장병 4명과 손가락에 총상을 입고 전역한 권기형 씨(29)가 자신들이 탔던 것과 똑같이 만든 복제함정을 둘러봤다. 이 대위가 선명한 258개의 총알구멍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이 상사는 파편 몇 개나 남았지?” 이철규 상사(34)의 몸에는 파편 11개가 박혀 있다. 이 상사는 연평해전 직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이송돼 파편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의 허벅지를 찢어놓았던 탄두 하나와 파편 30여 개를 빼냈지만 아직도 그의 몸 곳곳에는 쇳조각이 박혀 있다.
교전 다음날 위문한다며 와선 “웃어주세요”
보훈등급 알아보러 갔더니 “예산낭비” 비아냥
가상훈련땐 “잘 알테니 부상자 역할 해라”
“의족하면 계속 복무 가능하다는 말에 눈물
일각 천안함 의혹제기엔 분통이 터집니다”


하지만 이 상사는 파편보다 ‘패잔병’이라는 오해와 무관심 때문에 생긴 상처가 쓰라리다고 했다. “몸에 박힌 파편보다 마음에 박힌 파편이 더 아픕니다. 8년 동안을 고통 속에 살게 했던 마음의 파편요.”

2002년 6월 29일 북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서 21명이 살아남았다. 당시 탑승자 27명 가운데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21명이 생존했지만 천안함 폭침사건 때 연평해전에서 살아남은 박경수 중사가 사망하면서 생존자는 20명이 됐다. 이 중 7명은 아직 해군 제복을 입고 있다. 29일 연평해전 8주년을 맞아 동아일보는 제2연평해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20명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봤다.

○ 무관심과 냉대 속에 지낸 8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삐딱하기만 했다. 수차례 수술을 견디고 부상을 이겨낸 이들에게 돌아온 인사는 “보상금 얼마 받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술 한잔 사라”는 이도 있었다. 패잔병 취급을 받았던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은 숨어서 울 수밖에 없었다.

승전으로 떠들썩하던 제1연평해전에 비해 패전으로 여겨진 제2연평해전은 잊혀진 해전이었다. 전창성 중사(33)는 “부대 내 달력에도 제1연평해전만 표시돼 있었다”고 말했다. 훈장 수여에서도 홀대를 받았다. 제1연평해전 당시 2함대 사령관을 포함해 7명이 을지무공훈장을, 11명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제2연평해전 때는 고 윤영하 소령이 을지무공훈장을, 이희완 대위와 전사한 5명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전역자 중 2명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나머지는 무공 포장과 대통령, 국무총리 표창에 그쳤다.

전사자 예우부터 생존장병들에 대한 정신 치료 등 지원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병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유명 인사들의 방문에 응해야 했다. 전역한 곽진성 씨(31)는 “해전 바로 다음 날 미스코리아들이 위문을 한다며 찾아와서는 카메라에 대고 ‘좀 웃어주세요’ 하더라”며 참담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김택중 씨(29)는 참수리 357호정 다음 근무지에서 가상훈련 때 부상자 역할을 맡아야 했다. “김 병장이 잘 알 테니까 부상자 역을 맡아라.” 부상자를 연기하던 그 순간 김 씨는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 부상에도 아픈 내색 못하고

부상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유공자 신청 하려고 혼자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성남에서 대구 보훈청까지 갔죠. 그런데 서류가 누락됐다고 해 다시 버스를 타고 온 길을 또 가는데 서럽더라고요.” 곽진성 씨는 총상으로 오른 손목이 부러지고 팔의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팔에 붕대를 감고 다리를 절며 국군수도병원에서 대구까지 홀로 갔다. 그렇게 해서 받은 건 보훈등급 6급이 다였다. 외상이 남지 않은 고경락 씨(29)와 김택중 씨는 가까스로 7급을 받았다. “주변 권유로 보훈청에 보훈등급을 알아보러 갔는데 담당 군의관이 쓱쓱 훑어보더니 ‘이런 거 다 주면 국가예산 낭비’라고 하더군요.” 교전 당시 병기병으로 함교에서 소총을 겨누었던 고 씨는 오른팔에 파편상을 입었다. 김 씨도 다리에 신경이 손상돼 수시로 저리고 아프다.

○ 그래도 제복이 자랑스럽다

6일 현충일, 이희완 대위 등 현역 장병 6명과 전역한 김택중 씨, 권기형 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였다. 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을 차례로 참배한 이들은 이어 천안함 묘역에 영면한 박경수 중사를 찾았다. “같이 참배 와야 할 박 중사가 왜 여기 누워 있나….”

전사한 6명의 영웅이 누구보다 자랑스럽다는 이들은 그래도 제복이 좋다. 전투 중 포탄에 다리를 맞아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왼쪽 다리에도 주먹만 한 관통상을 입은 부정장 이희완 대위는 딱 한 번 울었다. 튼튼하던 다리를 자르고서가 아니다. 의족을 하면 계속 해군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이 대위는 “국제사회도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북한을 규탄하고 있는데 일부 단체는 북한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그들도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 맞는지 묻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동영상 = 생존장병들이 겪게 될 심리적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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