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생계형 아이돌? 일본엔 ‘선거형’ 아이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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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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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걸그룹 AKB48의 새 싱글 '포니테루토 슈슈'(ポニ─テ─ルとシュシュ: 포니테일과 슈슈)가 발매 첫 주 동안 51만3453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이번 주 오리콘 주간차트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 여자 아이돌 그룹의 싱글 음반이 발매 첫 주 만에 50만장 이상 팔린 것은 2000년 발매된 모닝구무스메의 '렝아이 레보류숑 21'(戀愛レボリュ¤ション21: 연애 레볼루션 21) 이후 10년여 만에 처음이다.

2006년 데뷔한 뒤 상승세를 이어온 AKB48은 이번 싱글로 대박이 나면서 일본 최고의 걸그룹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이번 주 2위에 오른 동방신기 출신 시아준수의 첫 솔로 싱글도 19만5336장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지만 AKB48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당해내진 못했다.

그런데 AKB48의 새 음반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배경을 두고 일본에선 논란이 뜨겁다. 음악 자체의 수준이나 인기가 아닌 팬심을 자극, 소위 '총선거 시스템'으로 팬들의 음반 사재기를 유도한 상술이라는 지적이다.

▶ 선호하는 멤버가 무대에 설 자격, 투표로?

'총선거 시스템'이란 9일 도쿄, 코베, 후쿠오카 등 전국 주요 7개 도시에서 동시에 발표되는 'AKB48 17번째 싱글 선발 총선거'를 뜻한다. 이 이벤트에서 8월 18일 발매 예정인 이 그룹의 다음 싱글 활동에 참여할 멤버 21명이 팬들의 투표 결과로 결정된다.

AKB48은 현재 멤버 수가 47명에 이르는 거대 그룹이다. 이 가운데 득표가 많은 순서대로 21명만 다음 싱글 타이틀곡 활동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탈락한 멤버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커플링곡(활동하지 않는 곡) 담당으로 전락해 TV 출연 등 음반 활동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같은 그룹에 속해 있지만 투표를 통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출 자격을 얻는 멤버는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멤버들의 최종 순위는 9일 1위부터 순서대로 발표돼 각자의 인기 정도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팬들이 이 투표에 참여해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를 무대에 세우려면 지난주 발매된 16번째 싱글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싱글에 첨부된 시리얼 넘버 카드가 있어야만 투표권 하나를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AKB48 팬들 사이에선 경쟁이 심화되면서 음반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사람이 수십, 수백 장에 이르는 음반을 한꺼번에 구입해 선거권을 대량으로 확보한 뒤 몰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 중간집계 시시각각 발표…상술의 절정?

AKB48의 소속사 측은 9일 총선거 이전에 중간집계 상황을 시시각각 발표하며 팬들의 음반 사재기를 부추기고 있다. 발매 첫 주 만에 51만장을 넘어선 엄청난 판매고의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25일 투표가 시작된 뒤 중간집계 결과 발표에 따라 멤버들의 순위가 뒤바뀌면서 팬심이 자극받고 있는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위권을 살펴보면 지난달 26일 첫 발표 당시엔 △1위 마에다 아츠코(6846표) △2위 오오시마 유코(6317표) △3위 와타나베 마유(4072표) △4위 이타노 토모미(3802표) △5위 시노다 마리코(3765표)의 순이었다.

그러나 2일 발표된 2차 중간집계 결과에선 1위와 2위를 마에다 아츠코(2만966표)와 오오시마 유코(19465표)가 유지한 가운데 3~5위의 순위가 달라졌다. 3위는 1차 발표 때 4위였던 이타노 토모미(1만3473표)가, 4위는 5위였던 시노다 마리코(1만3289표)가 차지했다. 3위에 올랐던 와타나베 마유는 1만2307표로 5위로 밀려났다.

상위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순위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아슬아슬한 표차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멤버들도 적지 않다. 팬들이 중간집계 결과를 보고 자신이 선호하는 멤버의 순위가 뒤처져 있으면 음반을 경쟁적으로 다시 구입하며 몰표 투표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투표권 이외에도 AKB48 멤버들의 프로필을 소개한 '총선거 가이드북' 역시 발매 첫 주에 5만부가량 판매돼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선 팬심을 자극해 음반을 팔려는 지나친 상술이라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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