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성장기지 ‘경제자유 구역’]<6>폴란드의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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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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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용지 1유로에 법인세 최고 80% 감면… 중유럽 생산허브로

《8폴란드 국토를 동서로 관통해 독일과 체코를 잇는 ‘A1 고속도로’ 위로 공장에서 갓 출고된 자동차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달리고 있었다. 이 자동차들은 폴란드 최대의 경제특구(SEZ)인 카토비체에서 생산된 차량들이다.

카토비체 SEZ에서 생산된 차량은 육로(陸路)를 통해 서유럽 각국으로 수출된다. 카토비체는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26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보나 호이노스카 폴란드투자청(PAIZ) 국장은 8일 “글로벌 위기에도 끄떡없이 폴란드 SEZ의 공장 굴뚝의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며 “SEZ는 지역 경제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럽과 동유럽 중간에 위치해 ‘중유럽’으로 불리는 폴란드는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의 틈바구니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폴란드는 기술이 앞선 서유럽과 저렴한 노동력과 생산비용을 가진 동유럽 사이에서 낀 ‘샌드위치’ 상황에 몰릴 수도 있었지만, 서유럽 수준의 정책·운영경쟁력을 확보하고 독일 체코 등과 인접한 지리적 특징을 활용해 유럽의 제조업 생산기지로 거듭난 것.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이 실시한 세계 20개 경제자유구역(FEZ)의 경쟁력지수(FCI) 조사에서도 폴란드의 정책·운영 경쟁력은 6위로 15위권 밖에 머문 한국 경제자유구역 3곳을 압도했다.》
접근성 높이려 국경따라 특구 조성… GM-볼보 등 자동차 회사 끌어들여
기업이 원하는 지역을 특구로 지정… 브로츠와프, LG계열사 대거 유치


○ 중유럽 지렛대 삼아 유럽의 제조허브


폴란드는 1989년 사회주의가 붕괴한 뒤 경제공황에 빠졌다. 실업률이 무려 30∼40%로 치솟았다. 폴란드 정부는 1996년 지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제특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폴란드 14개 경제특구에 1205개 기업이 모두 655억5550만 즈워티(약 26조2000억 원)를 투자했다. 그 덕분에 폴란드의 실업률은 현재 10% 선으로 떨어졌다. 특히 카토비체의 실업률은 약 2%에 그친다. 폴란드는 지난해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1.7%)을 했다.

폴란드는 독일과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등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장점을 살려 경제특구를 국경 근처에 모두 배치했다. 이들 국가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특구별로 주력 산업을 정하고, 해당 분야의 대표 기업을 ‘앵커(anchor) 기업’으로 유치하고 있다.

카토비체 경제특구청의 카타시나 립스카 씨는 “카토비체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독일과 가까워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삼았다”며 “다른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GM과 피아트, 볼보, 델파이 등 굵직한 자동차 회사를 앵커 기업으로 유치했다”고 말했다. 현재 카토비체 경제특구에는 179개 기업이 모두 39억5000만 유로(약 6조1200억 원)를 투자했다.

○ 고객 요구에 맞춘 경제특구

경제특구의 가장 큰 혜택은 40∼60%(대기업 기준)의 법인세 감면이다. 카토비체에 입주한 스페인의 물류 관련 설비 회사인 메카룩스가 2001년부터 2016년까지 감면받는 법인세는 무려 1억4100만 즈워티(약 564억 원)에 이른다. 이는 4만여 m²의 용지에 8억 즈워티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지역 주민 700여 명을 고용한 대가다. 투자액의 20%에 육박하는 금액을 되돌려 받는 셈. 후안 산토스 메카룩스 중유럽법인 대표는 “체코나 헝가리 등 주변국의 투자 조건도 샅샅이 뒤졌는데 폴란드가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유치하겠다고 마음먹은 기업에는 파격적인 혜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폴란드 서부의 바우브지흐 경제특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LG디스플레이 등 LG 계열사가 바우브지흐 인근의 브로츠와프에 투자 의향을 타진하자 이 지역이 특구가 아니었는데도 특구로 지정해 줬다. 또 일부 계열사에는 공장 용지를 ‘단돈 1유로’에 제공했다. 그 덕분에 무밭이었던 브로츠와프는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이 집결한 유럽 최대의 LG 생산기지가 됐다.

폴란드 경제특구는 14개지만 각 특구에 딸린 하위지역은 모두 300개가 넘는다. 기업을 먼저 유치하고, 기업이 원하는 입지를 특구로 지정해 주는 ‘선(先)유치 후(後)조성’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용지를 먼저 조성한 뒤 기업을 유치하는 일반적인 경제자유구역의 운영방식과 확연하게 다르다.

○ 국내 기업 역차별 금지…중기 우대

앵커 기업이 ‘나 홀로 기업’이 되지 않고 경제특구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연관 기업을 유치해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점도 폴란드의 독특한 전략이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우대하고 국내 기업을 역(逆)차별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테레사 코리친스카 폴란드 경제부 외국인직접투자(FDI) 국장은 “앵커 기업을 위해 산업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폴란드 내부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중소기업을 우대한다”고 설명했다.

폴란드 정부는 50명 미만을 고용하고 투자액이 700만 유로 이하인 중소기업에는 기존의 법인세 감면 혜택에서 20%포인트를 더 깎아준다. 법인세 감면 비율은 최대 80%가 되는 셈.

이와 함께 폴란드 경제활동자유법에 따라 국내 기업은 외국 기업과 세금 규정도 똑같이 적용받고, 각종 혜택도 똑같이 받게 했다. 그 덕분에 경제특구 내의 폴란드 기업 비율은 약 20%에 이른다.


■ 피오트르 보자제크 특구 대표

15년째 CEO… 정치입김 막아
철저히 ‘돈 버는 회사’로 키워

‘15년째 최고경영자(CEO).’

피오트르 보자제크 폴란드 카토비체 경제특구청(KSEZ) 대표(사진)는 15년째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7년간 수장(首長)이 여러 번 바뀐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청과는 다르다. 폴란드 경제특구의 가장 큰 특징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정책 실행능력과 철저한 성과 중심의 운영 방식이다.

KSEZ는 중앙정부인 폴란드 경제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주로 참여한 주식회사.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개발 외에도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한마디로 ‘KSEZ=돈 버는 회사’다.

이를 위해 경제부는 KSEZ에 입주 기업 승인과 세제 혜택 부여 등 각종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했다. 또 KSEZ는 정부기관 소유의 용지를 매입해 직접 개발하고 입주 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개발 수수료를 받는다. 일종의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KSEZ는 2008년 4670만 즈워티(약 18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을 매출로 나눈 매출 순이익률이 60.9%나 된다. 이는 KSEZ가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인책이 된다.

KSEZ 대표의 임기는 5년이지만 성과가 나면 연임할 수 있다. 그 덕분에 KSEZ는 장기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지역 출신 정치인의 입김도 버틸 수 있었다.

보자제크 대표는 “원스톱 행정 서비스나 투자 기업 유치 등 기본 업무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 사업을 통해 KSEZ를 지속 가능한 회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나프랑카’ 특구

기존 자동차 단지 리노베이션… 의료-식품-영상 메카 부푼 꿈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유일한 경제특구인 ‘소나프랑카’. 스페인을 대표하는 자동차 생산거점이자 물류 허브였던 이곳이 최근 미래형 경제특구로 변신하고 있다. 총면적 600만 m² 규모의 특구에는 벨기에 대형 유통업체의 물류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유통 단지 옆에는 대형 ‘식료산업 허브’ 기지가 건설 중이었다. 제약사의 연구단지와 보건의료기기 생산 공장 등으로 구성된 ‘첨단 의료단지’도 들어설 예정이다.

2012년경 단지가 완공되면 소나프랑카는 제조업 기반 특구에서 첨단 보건의료, 영상문화, 식료품 산업 중심의 미래형 경제특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생명과학 문화산업 등 첨단 제조업과 지식기반산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바르셀로나 시와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꿈이 이곳에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대 경제자유구역의 경쟁력지수(FCI)를 조사한 결과 소나프랑카의 종합 경쟁력 순위는 인천보다 한 계단 낮은 8위를 차지했다. 유럽의 2대 항구인 바르셀로나의 경제특구라는 점 때문에 입지 경쟁력은 7위를 차지했지만 요소 경쟁력과 정책·운영경쟁력이 각각 15위와 18위로 떨어져 중위권에 머물렀다.

이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스페인은 세제 감면 등 차별적인 정부지원 혜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도심 평균보다 3배 이상 싼 특구 임대료와 지리적 이점을 내세워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소나프랑카 운영 컨소시엄인 ‘엘 콘소르시’는 스페인 자동차 브랜드인 ‘세아트’가 2007년 공장을 이전하면서 남은 용지(50만 m²)를 혁신단지로 개발해 기업에 임대한다.

엘 콘소르시는 소나프랑카 특구 내의 인허가권, 토지 임대가 책정 등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바로셀로나 시 당국이나 자치정부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바르셀로나 시장이 엘 콘소르시의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는 지하철 9호선(2012년 말경 개통 예정), 간선도로 확충 등을 통해 엘 콘소르시의 사업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호세 로드리게스 엘 콘소르시 운영총괄 책임자는 “정부 지원 없이 자체 기금으로 혁신지구 개발사업을 완료하고 입주자를 모집할 것”이라며 “유럽 최저의 임대료, 반경 7km 이내에 공항 항만 도심이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국내외 기업이 입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배극인 미래전략연구소 신성장동력팀장
▽미래전략연구소
조용우 박용 한인재 하정민 김유영 신수정 기자
▽편집국
박희제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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