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제주 골드키위’가 탄생 못하는 까닭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코멘트
며칠 전 제주 올레길을 여행하다 한 마을의 이장님을 만났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장님은 직접 재배한 골드키위 한 박스를 ‘올레꾼’들에게 내놓았습니다. 낙과(落果)라지만 상한 곳도 없고 맛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과일을 ‘세상에 없는 제주 골드키위’라고 소개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골드키위의 종자(種子)는 우리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제스프리의 소유입니다. 강력한 보호정책에 따라 제주 농가가 생산한 골드키위는 제스프리가 전량 유통을 맡습니다. 브랜드도 당연히 ‘제스프리 골드키위’가 됩니다. 소비자들은 뉴질랜드산(産)과 제주산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이천쌀’, ‘청양고추’는 있어도 ‘제주 골드키위’는 탄생할 수 없는 과일이 되는 셈입니다.

제스프리의 관리는 엄격합니다. 제주 농가가 골드키위 나무를 새로 심거나 베어내려면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낙과를 따로 내다 파는 것도 금지돼 있죠. 규정을 어기면 1억 원이 넘는 벌금을 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장님은 “제스프리가 인공위성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철저히 감시를 한다더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제스프리의 권한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키위 농가들은 이 회사의 결정에 울고 웃습니다. 제스프리가 로열티를 20%에서 15%로 낮춰주자 농가가 그나마 주름살을 펴는가 하면, 선과(選果) 작업장을 갑자기 옮긴다고 하자 이해관계가 다른 농가 사이에서 싸움이 날 뻔하기도 했답니다.

제주의 키위 농가가 가진 불만은 많겠지만 사실 따져보면 이들은 제스프리 덕분에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스프리의 종자와 브랜드 파워, 마케팅이 없었더라면 돈을 벌기 어려웠을 테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