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영제]국민관심-정부의지로 정착된 ‘원산지표시제’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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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1년 만에 한우와 육우(고기를 얻기 위해 살찌운 얼룩소) 등 국내산 쇠고기 시장 점유율은 49.9%를 기록했다. 2000년에 52.7%를 기록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국산 쇠고기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하락을 거듭하여 2003년에는 36.3%까지 떨어졌다. 국산 쇠고기 점유율이 높아진 이유는 쇠고기 유통의 투명성 덕분이다. 모든 음식점에 대한 쇠고기 원산지 표시 의무제도와 국산 쇠고기 이력제의 시행이 시장에서 수입산과 국내산을 완전하게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살지만 식품안전에 대한 의식은 4만 달러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차례의 식품안전 사고를 겪고 난 후 식품행정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고,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계기로 식품안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의 골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만 갔다. 하지만 모든 음식점에 원산지표시제를 확대했고 이력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토록 한 결과 소비자 주권이 강화되고 국내 축산농가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됐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식당에 대한 원산지표시제는 큰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한국낙농육우협회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쇠고기를 살 때 특히 고려하는 점은 원산지(46%)와 품질(26%)이라는 답이 나왔다. 국산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이제 과거와 같이 식당에서 외식할 때나 시장과 마트에서 쇠고기를 사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소비자의 욕구는 현장의 농업인에게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됐다. 현재 산지 쇠고기 가격은 1년 전 쇠고기 협상 타결 시점보다 높아져 수입산 쇠고기 때문에 국내 사육농가가 어려워진다는 걱정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음식점 원산지표시제는 앞으로 소비자 기호를 차별화하여 원하는 쇠고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 먹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원산지표시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소가 태어나서 도축 가공 판매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하는 쇠고기 이력제가 도입됐다. 식품안전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원인을 추적해서 회수하고 대응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산 쇠고기 원산지 확인용으로 더 활용된다. 소 실명제라고 불리는 이력제는 2003년부터 시행한 일본이나 프랑스에 비해 늦게 출발했지만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강력하고 치밀한 제도와 소비자의 깨어 있는 의식 덕분이라고 본다.

중국산 설화김치, 고춧가루(국내 3, 중국 7), 검은깨(호주산), 인도산 참깨, 마(국산), 김밥 소시지(국산 돼지고기, 닭고기 사용), 오징어(원양어선, 냉동), 국산 참기름, 가쓰오부시(남태평양). 유명 시사 블로거가 묘사한 국숫집의 원산지 표시 모습이다. 아주 철저하다. 모든 학교 식당은 가정통신문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쇠고기의 원산지를 알린다. 몇몇 사람만 알거나 유통과정에서 쉬쉬했던 원산지가 학부모 모두에게 공개되니 안심할 만하다.

일본, 미국(어패류 등 일부 품목), 스위스 등 몇 개 나라에서만 가공식품 원료의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만들었다. 음식점 원산지표시제는 대부분 규정이 없거나 권장사항이다. 음식점 원산지 표시를 처벌조항을 두고 법적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가장 강력한 소비자 주권을 실현한 셈이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고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의지 표현이다. 정부의 의지와 소비자의 관심이 소비자를 진짜 왕으로 만든다.

하영제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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