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기업 M&A관련 ‘승자의 저주’ 무슨 의미…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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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들 제치는데는 성공했지만
너무 많은 자금투입 인수이후 곤욕

《최근 경제 기사를 읽다가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처음 봤습니다. 기업의 인수합병(M&A) 관련 기사에 이 말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승자의 저주는 어떻게 해서 유래된 말인가요. 또 어떤 의미로 사용되나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말은 미국 애틀랜틱리치필드사(ARCO)에서 근무한 3명의 석유기술자(케이펜, 클랩, 캠벨)가 1971년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과거 멕시코 만 석유시추권 경매시장에서 석유회사들이 치열한 입찰경쟁을 벌이면서 시추권이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낙찰됐고 결국 낙찰자는 경매에서 이기고도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를 받았다는 사례에서 언급됐습니다.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은 멕시코 만 연안에 매장된 석유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습니다. 기업들은 시추권을 따내기 위해 시추권의 가치(석유매장량)를 추정해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죠. 이 때문에 석유회사들이 써낸 입찰가격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특히 입찰자가 몰리면서 기업들은 경매에서 이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입찰가격을 써냈습니다. 결국 석유매장량의 실제 가치가 1000만 달러인 경매에서 매장된 석유 가치를 500만 달러나 1000만 달러로 추정한 기업들은 탈락하고 2000만 달러로 평가한 기업이 시추권을 따냈습니다. 이 기업은 입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국은 10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셈이죠.

이처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지는 현상을 승자의 저주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승자에게 내려진 저주’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죠. 한마디로 ‘겉으로는 이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 상처뿐인 영광, 허울 좋은 승리입니다.

승리가 재앙이 되는 사례는 주변에도 많습니다. 불완전한 정보하에서 입찰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적정한 가치를 웃도는 대가를 치르고 낙찰을 받는 사례는 경매시장뿐만 아니라 기업의 M&A 시장,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기업 M&A와 관련해서는 경쟁자를 제치고 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입한 탓에 결국 인수 후 곤욕을 치르는 사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해 지금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겪는 분란이 대표적입니다.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하이마트를 인수했던 유진그룹, 그룹 자산의 절반을 M&A를 통해 늘렸던 대한전선,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제조업체 아커야즈를 인수한 STX그룹, 세계 최대의 소형건설기계 제조업체 밥캣을 인수한 두산그룹 등이 올 상반기 내내 M&A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 프로야구단이 엄청난 금액을 들여 이적시장에 나온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왔지만 선수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소위 ‘먹튀’라고 하죠. 하지만 먹튀 선수를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문제는 선수의 미래가치를 신중하게 따져보지 않고 막연하게 과거 실적에만 의존한 구단의 판단착오에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승자의 저주는 대부분 잘못된 가치평가와 경쟁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입찰에 나서기 전에 투자 대상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무리한 경쟁은 피하는 게 최선의 전략입니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에 비해 사려는 사람은 정보가 부족하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제시한 가격보다 경쟁자의 입찰가격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불완전한 정보로 계산된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따라서 경쟁에서 질 수 있다는 조바심에 냉정을 잃고 목표가격 이상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입찰경쟁에서 이길 필요는 없습니다. 가치 있는 경쟁 외에는 양보하는 것이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입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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