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준모]神도 모르는 공공기관 단체협약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공공부문은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지 않는 데다 낙하산 사장이 노조와 충돌하기를 꺼려 극심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노출하고 있다. 하비 라이벤스타인이라는 경제학자는 공공부문의 방만한 경영과 임직원의 과도한 복지 나눠먹기 현상을 ‘X-비효율’이라고 명명하였다. 공공기관의 경영진이 노동조합과 담합해 소비자에게 불량 서비스를 공급하고 수취한 지대를 노동조합과 공유하기 위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X-비효율에 해당한다.

공공부문의 단체협약 사례를 보면 X-비효율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다. 1년의 유급 불임휴직, 3회 3000만 원까지 불임 시술비 지원, 조합원 또는 배우자가 석사 과정 입학 시 3년까지 휴직, 조합원 창업지원 휴직 3년, 노조 전임자를 동종 근로자 중 최고로 대우…. 자신들의 행복추구 비용을 국민 세금에 전가하는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주민이 선출한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공무원노조 앞에서는 맥을 못 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공무원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 사례들을 보면 거의 항복문서 같다. ‘노동조합의 활동에 필요한 차량을 제공한다’ ‘조합원이 조합 활동 관계로 국내외 출장을 갈 때에는 공무출장으로 인정한다’ ‘노조간부에 대하여 노조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유급 노조전임 활동을) 보장한다’, ‘조합발전을 위한 사업에 대하여 지원할 수 있다’ ‘노사합의하에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 모두 세금을 축내는 내용이다.

행복추구 비용을 세금에 전가

정부는 지난달 ‘신이 내린 단체협약’에 제동을 걸고자 30여 개 지자체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지자체 노사가 담합하여 삭제된 조항만큼 보충협약에 은폐한다면 ‘신도 모르는 단체협약’으로 여전히 남아 계속 세금으로 파티를 열어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다.

공공부문은 일은 덜하면서도 급여는 민간부문을 훨씬 웃돈다. 노조가 있는 공공기관에선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거품’(임금프리미엄)이 노조가 없는 민간부문에 비해 13.2∼14.2%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비화폐적 복리후생 및 고용안정의 시장가치를 더하면 과연 ‘신이 내린 직장’임이 실증적으로 입증된다.

향후 3대 공무원노조가 단일노조로 통합해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금속노조 다음의 최대 조직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행태를 보면 거대한 노조의 힘을 빌려 국민세금으로 철밥통을 키우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 노조의 모럴 해저드를 하루빨리 수술해야만 한다. 진정한 공익의 보호를 위해 임금도 생산성에 맞게 지급하고 민간부문 수준의 고용 유연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고령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은 공기업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렇게 덥석 받아줄 일이 아니다. 보수는 높고 일은 힘들지 않고 정년이 보장되다 보니 해마다 공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수백 대 1을 오르내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년 연장은 임금피크제와 같이, 임금과 생산성을 연계하는 임금유연화 프로그램 도입에 노사가 합의한 개별사업장에 한해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先) 공공부문 개혁-후(後) 고령화사회 대비의 정책우선 순위가 뒤바뀌어서는 곤란하다. 민간부문은 살아남기 위해 피를 말리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집권여당이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공공부문 노조에 영합한다면 국가경쟁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2007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우정공사 민영화를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으로 보고 정권의 운명을 거는 개혁을 추진해 성공시킨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공공부문 국가경쟁력 높여야

내년 6월이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다. 노동조합은 ‘생존권 사수’를 부르짖으며 선거를 앞둔 단체장을 위협해 ‘신도 모르는 단체협약’을 맺으려 시도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단체협약 사이트를 개설해 행정관청별 보충협약을 포함한 모든 단체협약을 게시해 국민이 유리알같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기업 경영 현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2005년 개통된 ‘알리오(www.alio.go.kr)’ 시스템은 소수 관계자들만이 열람해 기능이 극히 취약하다.

공공기관 노동조합 운영과 재정도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노조 간부 보수 등을 공개하고 조합비 일괄공제에 대해 조합원 동의를 정기적으로 구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조준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경제학 trustcho@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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