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민 감세’ ‘부자 증세’ 넘어서는 재정 대책 세울 때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어제 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세제 개편안은 경제적 취약층의 세금을 줄이고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렸다. ‘친(親)서민 세제’라고 하지만 서민 생활이 기대만큼 나아질지는 불확실하다. ‘서민 감세’와 ‘부자 증세’만으로 된 서민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부자들의 여윳돈이 투자로 이어져 일자리와 복지를 확대할 수 있도록 근본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법인세 인하 같은 감세 기조는 유지되지만 일부 세금 감면 제도의 폐지로 민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서민 감세’ 효과도 상쇄되고 만다. 투자 부진으로 성장과 일자리를 확대하지 못하고 재정 사정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큰일이다.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30만 원 이상 거래에서 영수증 발행이 의무화되고 1억 원 초과 고소득자의 근로소득 공제가 대폭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이 가벼운 고소득층에 대한 세원 관리를 강화해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일선 세정(稅政) 현장에서 실효(實效)를 거둘 수 있도록 세무당국이 철저히 감독할 필요가 있다.

1982년 도입돼 대기업 투자금액의 최대 10%를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던 임시투자세액 공제 제도가 사라진다. 법인세 감세보다 투자세액 공제 폐지로 기업 부담이 커져 투자활동이 위축된다면 세수 증대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저소득 근로자를 위해 소형 주택의 월세에 소득 공제를 해주고 폐업한 영세사업자가 재기할 때 500만 원까지 세금을 깎아 준다. 취약층에 대한 세금 감면 효과가 3조 원에 이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재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버티고 보자는 식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길 소지가 있는 체납 세금에 대한 면제 조치도 남발해선 안 된다. 세금을 깎아 주고 면제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서민에 대한 감세 조치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서 7조7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거둔다고 하나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 감소 13조2000억 원, 서민 지원 3조 원을 감안하면 재정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이후 재정 지출이 늘어나 작년 16조6000억 원이던 재정적자는 올해 50조 원이 넘고 국가 채무는 올해 366조 원에서 내년에는 4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나라 곳간이 비거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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