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워즈워스와 서정주

  • 입력 2009년 8월 25일 21시 05분


8월 초 평소 친분이 있는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영국에 다녀왔다. 영문학의 근원지이다 보니 작가들의 고향 또한 둘러볼 기회도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그의 생가와 기념관, 말년 집필실은 물론 처갓집까지 관광자원화해 놓고 있었다. 조상 한 사람 잘 둔 덕분에 동네 전체가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잘 짜인 동선에 따라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훑어보고, 각종 도서와 기념품을 사간다. 매일 저녁이면 1000석이 넘는 셰익스피어 전용 극장에서 그의 작품들이 공연된다. 대극장은 무려 2500억여 원을 들여 보수 공사 중이었다.

워즈워스 발자취 관광명소로

‘폭풍의 언덕’이 있는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고향 하워스는 한국의 태백과 같은 광산촌 고지대였다. 성공회 신부를 아버지로 둔 에밀리, 샬럿, 앤 등 브론테 세 자매는 각각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아그네스 그레이’ 같은 명작들을 남겼다. 하지만 여성은 책을 낼 수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으로 생전에 자신들의 이름으로는 책을 내지 못했다. 훗날 서머싯 몸이 자매의 작품을 재조명한 이후 작품의 배경이 된 그 근처 ‘폭풍의 언덕’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필수 순례 코스가 됐다. 기념관에는 육필원고는 물론이고 샬럿 브론테의 머리카락까지 전시돼 있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기념관인 ‘도브 코티지’가 있는 그래스미어는 호수와 전원이 그림처럼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 그는 이곳에서 아내 여동생등과 함께 8년을 살았다. 거실 침실 손님방은 물론 그가 읽던 책, 사진, 여권부터 어린 시절 타던 나무 스케이트까지 보관돼 있다. 워즈워스가 살지 않았더라면 그래스미어는 그저 평범한 호숫가 마을에 불과했을 것이다.

작가 정미경 씨는 “도대체 문학이 무엇이기에 오래전 떠나간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가 자문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는 착잡했다. 한 달여 전 취재차 전북 고창에서 거센 빗길을 뚫고 미당(未堂) 시문학관을 방문했을 때의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미당의 생가 일원에 있던 폐교 터를 활용해 지은 문학관은 규모와 전시물 자체는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전시실 맨 마지막 방에 들어갔을 때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당의 친일 작품이라며 시 수필 등 7편을 커다란 액자에 넣어 보란 듯이 전시해 놓은 것이다. 화가나 작가의 기념관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허다한 인간적 허물보다는 예술혼과 성취를 더욱 기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함께 간 여성 성직자는 “친일문학 전시관도 아닌 작가 고향의 기념관에까지 이런 식으로 해놓을 필요가 있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대중 정부는 미당이 근대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그의 영전에 금관문화훈장을 바치지 않았던가.

미당 시문학관엔 ‘친일작품’ 전시

작가 C 씨는 “미당이 우리 문학과 모국어에 끼친 은혜를 감안할 때 그의 잘못에 대해서는 생시에 당한 모욕과 상처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말했다. 교수 K 씨는 “작은 인물도 크게 기르고, 별것 아닌 장소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성숙된 나라와 민족”이라고만 언급했다. 물론 미당의 행적을 가감 없이 드러내 놓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나 워즈워스라고 인간적 과오가 없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중 반미 활동으로 정신병원에 연금된 에즈라 파운드나 친나치 활동을 한 카라얀에 대해 미국과 독일은 그들의 인간적 과오와 예술적 업적을 전혀 별개로 평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영국과 한국의 두 탁월한 서정시인은 시 자체보다는 삶의 궤적으로 조국에서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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