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기식]영화 ‘해운대’에 비친 지방에 대한 편견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5분


영화 ‘해운대’의 관람객이 9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방이 배경이 되는 영화, 특히 부산이 중심인 영화가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니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관람 대열에 합류했다. 120분이라는 시간에 부산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하니 감독이나 배우의 노고가 느껴졌다.

영화를 보면서 고쳤으면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린 구조적 현상, 다시 말해 중앙이 지방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표준말을 구사하며 제도와 규칙을 강조하는 서울 출신 지질학자나, 사투리를 사용하며 주먹구구식 관행에 얽매인 부산 토박이 재해본부장의 모습, 서울에서 온 예쁜 여학생이 자신을 구해준 잘생기고 순수한 해양구조대원에게 사투리를 고치라고 강요하는 장면은 중앙과 지방의 일처리 방식이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인식과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짧게 보아도 거의 15년 가까이 지방화, 분권화를 추진했음에도 이런 인식과 구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이런 인식과 구조다 보니 지방에서 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해도 중앙정부나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같이 외국의 유명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에나 반짝 관심이 집중될 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정치 경제 분야의 국제협력 활동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일로 치부하고 축소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에서의 국가 간 협의나 교류를 경시하는 이유는 국가 간 교류나 협력 업무는 중앙정부만 하는 사무라고 보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방의 국제화(glocalization) 시대에 국가 간 협력이나 교류의 주체는 중앙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산의 경우 수십 년 동안 도시 간 자매결연, 우호교류협정 같은 경험을 축적해 이제는 다른 국가의 지역(일본의 규슈)과 초광역경제권 구축에 나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역 차원에서의 국가 간 협의나 교류는 정치·군사·안보 문제 등 협의가 어려운 부분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실질적인 경제협력이나 문화교류를 촉진할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세계의 선진국은 이런 장점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국가 간 협의나 교류를 적극 독려하고 활용하며 지역 간 교류 협력 역량을 키우는 일에도 열심이다. 그런 대표적인 결과가 유럽통합이 될 수 있다. 공동체 예산의 상당부분을 지역 간 협력과 동질성을 키우는 데 쓴다. 지역 간 경제력 격차를 국가 간 격차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여긴다.

요즘 한창 논의하는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축에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들고 나온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은 중앙정부만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중앙과 지방의 유기적인 관계와 협력이 중요하다.

부산에서는 지금 제4차 ‘동북아 영리더스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다음 주에는 ‘제18차 동북아경제포럼’이 개최된다. 참가인원만 200명이 넘고 2주간 진행하니 지방도시에서 쉽게 치를 수 있는 국제행사는 아니다. 동북아 영리더스 프로그램은 미국 프리먼재단의 후원으로 2006년부터 해마다 열린다. 지원자는 젊은 박사학위 소지자, 교수와 박사 후 과정생, 경제 역사 법 사회 통상 정치 환경공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이들은 소규모 세미나 그룹으로 나눠 토론을 한다. 이들은 또 동북아경제포럼에 참여하는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탐방한다. 동북아경제포럼은 동북아 및 미국의 관료, 정치·경제 전문가가 다수 참여하는 행사로 ‘동북아의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동질성을 갖는 동북아 국가 간의 교류와 협력의 장인 만큼 지역 간 협력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각국 대표단에게 한국의 지방도시가 얼마나 성장잠재력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정부의 지원과 협조로 이번 행사가 지방 잔치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을 미래 동북아 지역 협력의 중심에 놓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기식 동아대 동북아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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