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환경스페셜과 PD수첩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KBS의 자연 다큐멘터리 ‘환경스페셜’이 조작된 장면을 방영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뒤 KBS가 신속한 자체 조사와 징계 결정을 내렸다. 문제가 된 내용은 지난해 3월 방영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편에서 수리부엉이가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수리부엉이가 날쌘 토끼를 사냥하는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고 밝히면서 해당 장면을 내보냈으나 실제로는 토끼의 발을 묶어 놓고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작 의혹이 보도된 것은 7월 23일이었고 KBS가 관련 직원들을 중징계한 것은 이달 7일이었다. 보름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시청자들은 ‘환경스페셜’을 보면서 자연 그대로 찍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PD들의 집념과 노력을 높이 사기도 한다. 이런 신뢰가 무너지면 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은 이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명백해 순조롭게 이뤄질 것 같던 자체 조사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담당 PD가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에서도 환경스페셜과 같은 촬영 기법을 사용한다’며 ‘백상어가 물개를 잡아먹는 장면을 찍으면서 BBC 역시 물개를 묶어 놓고 촬영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BBC 관계자가 정면 부인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방송의 조작, 오보, 왜곡 사례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방송사 측이 어떤 대응 자세를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의 CBS는 2004년 ‘부시 대통령이 부실하게 군복무를 했다’는 오보를 냈다. 보도의 근거가 됐던 메모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오보 당사자들이 파면됐다. 특히 공영방송이라면 방송사 직원이 아닌 시청자의 위치에서 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 MBC ‘PD수첩’의 광우병 왜곡 보도는 이번 ‘환경스페셜’의 조작 사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는데도 MBC 측은 1년 넘게 ‘내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처럼 반성을 모르니 시청자에게 외면당하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필연이다. MBC의 대주주로서 최근 새로 선임된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이 MBC의 뿌리 깊은 조직 이기주의와 전파(電波)의 집단 사유화를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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