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차세대 글로벌 기업이 안 보인다

  • 입력 2009년 8월 6일 20시 33분


우리 국민들은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대기업을 독점과 비리의 온상인 양 비판하면서도 ‘좋아하는 기업’이나 ‘취직하고 싶은 기업’을 꼽으라면 대기업이 먼저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기업에 비판적 내용이 많다. ‘다른 기업이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고의로 방해하며, 다른 기업을 비방하고, 허위 과대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하는’(K출판사 중학사회) 존재로 가르친다. 학교를 마치고 기업에 들어가면 비로소 이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의 주력 기업은 잘나가지만

좋아하는 기업, 취직하고 싶은 기업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의 명단과 거의 일치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SK텔레콤 등 글로벌 기업이 단골이다. 이들은 국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요즘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과 LG의 2차전지가 BMW와 GM의 전기자동차용 전지로 독점 공급되는가 하면, 반도체 휴대전화 TV 조선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툰다.

기업을 죄악시하는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은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이 일자리와 복지에 무슨 기여를 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이 많은 순위는 국가 경제 순위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1996년 13개 기업이 500대 기업에 포함돼 국가별 순위 7위를 기록했으나 10년 후인 2005년에는 12개로 줄고 순위는 9위로 2계단 떨어졌다. 반면 중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등 신흥국가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약진했다. 중국은 1995년에 15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고 인도 러시아 멕시코도 20위 수준에서 5, 6계단씩 상승했다.

우리의 국가 경제 순위는 2002년과 2003년 연속 세계 11위까지 올랐다가 내리막길이다. 2004년에는 인도, 그 다음에는 브라질 러시아 호주에 차례로 밀려 5년 만에 4계단이나 떨어졌다. 새 글로벌 기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순위는 더 밀릴 수밖에 없다.

선진국 자리를 지키는 나라들은 글로벌 강자(强者)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일자리와 복지를 감당하려면 글로벌 기업의 존재가 필수이다. 중국은 1996년에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이 3개에 불과했으나 2006년에는 무려 20개나 늘었다. 그사이 중국인들의 소득도 복지도 향상됐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새로 창업해 매출 1조 원 이상 규모로 성장한 기업을 찾아볼 수 없다. 대를 이을 글로벌 기업이 없는 것이다. 제도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기업인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한 탓인가.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성장경로가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금융시장이 없고, 기업 인수합병(M&A) 같은 방법으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 먹을거리 만들 새 强者들 나와야

일본의 경제전문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씨는 한국 중소기업의 경영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본 중소기업이 한우물을 파는 ‘현미경 기업’인 데 비해 한국 중소기업은 새로운 것만 찾는 ‘망원경 기업’이라고 꼬집는다. 망원경 기업은 문어발 중소기업으로 클 수 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다져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향해 뛰는 기업과 그 직원들이 많아야 한다. 정부도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 벌어오는 부(富)의 혜택이 독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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