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수곤]절개지 붕괴, 천재지변 아닌 시공사 책임

  • 입력 2009년 7월 28일 02시 50분


7일부터 열흘간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오락가락하면서 발생한 장마로 200여 곳의 사면(斜面)이 붕괴됐다. 지역만 다를 뿐 매년 발생한 사면붕괴와 똑같은 원인임을 현장답사로 확인했다. 현재 국내 사면붕괴 대책은 폭우 때 공무원이 대기하다가 일이 생기면 신속히 복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전에 전국적인 사면관리 시스템에 따른 대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개지는 책임시공의 강화가 시급하다. 이번에도 도로와 택지 절개지가 도처에서 붕괴됐다. 부산에서만 16일 하루에 100여 건이 발생했다. 교량이 붕괴되면 건설사에 책임을 묻는데 절개지 붕괴는 대부분 천재지변으로 간주된다. 국내 건설규정상 절개지는 산 정상까지 물이 차올라도 안 무너지게 설계하므로 비가 많이 와서 무너졌다는 건 대부분 변명이다. 사전에 지질조사를 소홀히 하고 대충 설계한 탓이다. 그런데 대부분 천재지변으로 인정된다. 공무원도 관리소홀 처벌이 두려워 묵인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 발주 절개지의 복구비용은 재해대책비로 국가에서 지출하는데 절개지 한 곳을 복구하는 데 수십억 원이 드는 것은 보통이다. 경우에 따라서 240억 원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절개지를 건설한 업자가 복구해야 하는 비용을 국고에서 지출하는 격인데 절개지가 무너지면 공사가 늘어나므로 오히려 돈을 번다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부실한 설계로 절개지 공사 도중에 30% 정도의 하자가 생겨 설계를 변경하고 공사지연 등의 피해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완공 후에도 붕괴사고가 잦다. 절개지 붕괴로 인명피해가 발생해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해도 기술적인 문제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허술한 지질조사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절개지를 건설한 업자에게 책임지도록 하면 배상이 두려워서라도 안전하게 만들어 붕괴가 크게 줄어들고 국가 재해복구예산도 크게 절감될 것이다.

산지에서 계곡을 막고 도로와 택지를 개발하다가 계곡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m 두께의 토사가 흘러내리고 나무까지 뽑혀서 배수구를 막고 도로 쪽으로 범람할 수 있다. 2002년 동해고속도로 현남 나들목과 2006년 영동고속도로 평창∼진부 구간의 경우 도로 옆 계곡에서 수많은 토석류와 나무가 유입돼 교통이 3일간 두절된 바 있다. 최근에 개통한 춘천고속도로도 82개의 터널 출입구를 대부분 계곡부에 설치했으나 대비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국도도 그대로 방치하다가 14일 경기 남양주시 경춘국도 절개지 옆 계곡에서 토석류와 나무가 유출돼 지나가던 차량 2대가 매몰되면서 1명이 숨졌다.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7일과 16일에 집중호우로 계곡부에 건설된 택지와 차량이 토사에 매몰됐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신뢰성이 있고 효율적인 사면재해관리 시스템의 부재이다. 어느 지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부는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일선 공무원의 재해위험지역 평가는 신뢰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붕괴 직후 현장에 복구인원을 투입해 토석류를 신속히 치우지만 원인 규명을 하지는 않는다. 전문기술자를 붕괴현장에 같이 투입해서 원인을 신속히 분석해 대책수립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담당 공무원은 처벌이 두려워 원인 규명과 자료 공개에 소극적이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범부처적인 사면재해전문 연구 및 관리기관이 필요하다. 산의 상부는 산림청, 중간의 고속도로는 국토해양부, 하부는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데 산사태는 상부에서 하부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므로 여러 부처를 총괄하는 관리체제가 필요하다. 홍콩에서 무계획으로 산지를 개발하다가 1972년 산사태로 아파트가 붕괴되어 67명이 숨지자 설립된 사면재해청 같은 독립조직을 고려할 만하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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