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특집]현장에서/싱가포르에 우뚝 선 ‘건설 코리아’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호텔 현장은 상량식을 하루 앞둔 7일 밤에도 낮처럼 환했다. 시공사인 쌍용건설 본사 직원들을 비롯해 현지 직원 수백 명이 3교대 24시간 근무체제로 일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돌아보다 보니 인근에서 공사하는 한국 건설업체는 쌍용건설 한 곳이 아니었다. 현대건설, 삼보이엔씨 등 익숙한 한글 이름들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V)이 추진 중인 각종 사업을 수주해 공사하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쌍용건설,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을 비롯해 최근에는 대림산업, GS건설, SK건설도 싱가포르 시장에 새로 진출했다.

한국 건설업체들이 싱가포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일단 물량 자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인구는 약 485만 명으로 한국의 10% 수준이지만 건설시장 규모는 한국의 30% 정도인 30조 원으로 큰 편이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국토의 12%를 차지하는 도로를 더 보급하기 위해 각종 도로공사에 재정을 투입하고 2020년까지 지하철 등 도심 인프라 확충에 4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여기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로 선진국인데도 세계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건설시장을 개방한 점도 한국 건설업체들에 기회가 됐다. 건설업 자체가 발달하지 않은 싱가포르는 보통 자국의 건설업체에 수주 기회를 더 많이 주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비교적 공정하게 입찰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중국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덤핑식 가격 전략이 통하지 않아 시공력이 뛰어난 한국 업체들이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현지에서 만난 림복응안 LTV 차관은 “한국 건설업체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특유의 성실성으로 싱가포르 시장에서 단기간에 일본에 필적한 만한 라이벌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금융 위기 이후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국내 시장에 다걸기(올인)해서는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포트폴리오 분산에 나선 것이다. 국내 주택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공공토목 투자도 줄어 건설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여전히 건설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은 넓다. 특이한 디자인의 건물이 많이 설계되면서 이를 시공하는 고급 건축 분야나 담수 플랜트 등 녹색성장 산업의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다시 찾아올 전 세계적인 경기 활황기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관련 경험과 기술을 미리 축적하는 한국 건설업체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정혜진 경제부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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