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진짜 3不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어제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김종현 이사장과 조찬을 했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이른바 ‘특성화 고등학교’로, 재작년 9월 한이헌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교장으로 초빙해 화제가 됐던 그 학교다.

김 이사장과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신문사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가 “공교육의 현장을 알고 싶다면 꼭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권유해 조찬을 갖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울한 아침 식사였다. 출근길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여의도 증권가의 고층빌딩들이 어느 순간 사상누각처럼 느껴졌다.

한양대 공대를 나와 미국 조지아텍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딴 김 이사장은 신임 교사 채용 얘기부터 했다. 채용 방법이 엉뚱했다. 교사들에게 대학입시 수능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 교사에게는 수능 영어를, 수학 교사에게는 수능 수학시험 문제를 주는데 답안은 주관식으로 제출하게 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떤지 아십니까?”라면서 ‘신임교사 채용 1차 지필평가 결과’를 보여줬다. 수학과 물리를 보니 50점을 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귀국 후 철강사업으로 기반을 다진 김 이사장이 고교 설립을 포기하고 대신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를 인수한 게 3년 반 전. 교사를 채용하면서 수능시험을 보게 한다는 소문이 나자 처음엔 150명쯤 몰리던 지원자들이 50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기피 학교로 찍힌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실력 없는 교사를 퇴출시킬 수도 없고, 열심히 하는 교사를 승진시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월급도 올려줄 수 없는 현실이 그를 가로막았다.

“자기 과목에서 50점도 못 받는 사람들이지만 어딘가에 가서는 교사를 할 겁니다. 일단 교사로 임용되면 교권이라는 이름 아래 그런 말도 안 되는 무능이 감춰집니다.” 그는 정부가 교원평가를 외고 있지만 교원평가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며 “공교육 개혁의 핵심은 학습권 개혁”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실력 있고, 열심히 하는 교사 밑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공교육 개혁이라고 했다. 평이한 말이었지만 그 어떤 교육학자, 교육정책 입안자의 언사(言辭)보다 울림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이래 대한민국 교육은 아직도 3불(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진짜 3불은 따로 있다. 실력 없는 교사를 퇴출시킬 수도 없고, 열심히 하는 교사를 승진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월급이나 성과급도 올려줄 수 없는 퇴출 불가, 승진 불가, 보상 불가가 바로 진짜 3불이다.

김 이사장은 그 외에도 많은 얘기를 했다. 하나같이 기가 막힌 공교육의 맨얼굴이었다. 그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는 용병(학파라치)을 동원해 학원단속에 정신이 없고, 국회는 교원평가제가 무슨 노리개라도 되는 양 부지하세월로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있다. 그 교원평가제라는 것도 누더기에 불과하고….

문득 김 이사장이 안쓰러웠다. 동년배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한 기도(Serenity Prayer)’를 되뇌었다.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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