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헌절 아침에 ‘헌법의 가치’를 생각한다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5분


우리나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제헌절이 어떤 날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박성혁 교수가 법무부의 의뢰로 8∼10일 전국 8개 중고교 학생 17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제헌절이 ‘우리나라의 헌법 제정 공포를 기념한 날’이라고 정확히 답한 학생은 39.3%에 불과했다. 2007년부터는 공휴일에서 제외돼 관심이 더 줄었을 것이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은 9차례 개정을 거치는 동안 영욕을 겪기도 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과 그 수단으로서의 법치주의는 굳건하게 유지됐다.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 개 국가 중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성취한 모범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헌법적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르듯 헌법의 소중한 가치도 잘 깨닫지 못할 수 있다. 통치구조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 신뢰와 예측가능성의 보장 같은 가치가 모두 헌법에 근거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헌법의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이 ‘그놈의 헌법’이라며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을 능멸하면서 정치권에 헌법 경시풍조가 만연했다. 국회 정당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헌법을 유린하는 세력의 반(反)헌법적 행태는 청소년 세대에게 ‘헌법은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장식물’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헌법에 규정된 통일 원칙을 무시하고 ‘어떤 체제라도 통일만 되면 그만’이라는 통일지상주의를 부르짖는 세력도 있다. 헌법은 국가목표로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개월 이상 폭력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휩쓸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을 조롱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우리는 포퓰리즘에 의한 헌법 해석도 경계해야 한다.

2007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령 가운데 3건은 헌재가 정한 시한인 지난해 12월 31일까지 개정되지 않아 해당 법령이 효력을 상실했다. 국회의 헌법 무시와 직무유기가 일상화되다시피 한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고 노숙하며 사상 초유의 ‘여야 동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헌법에 규정된 의회민주주의 정신과 절차를 망각한 탓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제헌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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