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정부도 ‘규제 전봇대’ 왜 제대로 못 뽑나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그제 내놓은 보고서에서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불합리한 규제가 아직도 많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공정거래, 토지이용, 금융 등 8개 분야에서 총 135건의 규제개혁 과제를 선정하고 대표적 사례 30개를 공개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 2년차에도 여전히 ‘규제 전봇대’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충남 천안의 한 회사는 공장용지 안에 창고를 새로 짓는 과정에서 지구단위계획 변경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으라는 통보를 받고 19개 첨부서류와 도면을 준비해야 했다. 관련 인허가를 받는 데 들어간 비용은 창고 건축비(500만 원)의 8배인 4000만 원이었다. 조선 항공 해운업체들이 계약 때 받는 선수금(先受金)은 차입금과 성격이 다른데도 부채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이들 업종 기업은 영업을 잘할수록 금융업 진출 심사 때 부채비율이 높아져 불이익을 보는 모순이 생긴다.

현 정부 출범 후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좌파정권 때보다 대체로 좋아지긴 했다. 그러나 ‘규제 전봇대를 확 뽑겠다’던 호언과는 달리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규제개혁 속도는 느리다. 규제개혁이 ‘기업 봐주기’로 몰릴까봐 정부가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인 강성 노조가 경영권마저 위협하는 판에 제도적 규제와 뿌리 깊은 행정 간섭이 기업들을 옭아매니 ‘기업 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동아일보와 지식경제부가 최근 국내에 진출한 60개 외국계 기업에 물었더니 동북아 3개국 중 가장 기업친화적인 정부로 일본과 중국을 꼽은 기업은 각각 62%와 26%였고 한국을 꼽은 기업은 7%에 그쳤다. 대한(對韓) 투자의 걸림돌로는 과도한 규제(50%·복수응답), 과도한 세금(43%), 강경한 노조(8%), 언어장벽(8%)을 많이 꼽았다.

기업의 요구 가운데 전체 국민경제 차원에서 정부가 선뜻 들어주기 어려운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충분히 풀 수 있는 규제까지 풀지 않고 미적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실제로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처지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해소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정책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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