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어닝 서프라이즈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요즘 유리가 부족해 야단이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TV가 폭발적으로 팔려 나가면서 LCD 기판용 유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자업종뿐 아니다. LG화학은 인도 중국 등에서 플라스틱, 전자소재 등의 수요 급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고, 현대·기아차는 북미지역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여 현지 언론으로부터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고릴라가 나타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최근 발표한 2분기(4∼6월) 실적 전망치에서 영업이익이 1분기(1∼3월)의 5배로 급증하는 등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 어닝시즌(earning season·기업실적 발표 시기)을 맞아 LG전자 역시 ‘깜짝 실적’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현대·기아차, 롯데쇼핑, 신세계 등도 좋은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기업들의 선전(善戰)은 과거 우리 기업들이 모델로 삼았던 해외 경쟁업체들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수천억 엔의 적자가 예상되고 모토로라 소니 도시바 등도 지난해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성장률이 줄어드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 수출 기업들의 실적은 원화 약세의 덕을 많이 봤다. 2년 전만 해도 9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1200∼1300원대로 30% 이상 올랐으니 가격 경쟁력 면에서 다른 나라, 특히 일본 제품에 비해 크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반기 이후 환율이 떨어지면 그동안의 원화 약세, 엔화 강세 효과가 줄면서 수익성에 압박을 받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통이나 식품 등 내수 기업들의 성과도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에 기댄 바가 적지 않아 향후 기업 실적을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고, 그 효과가 지금 발휘되고 있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최근 국내의 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는 사석에서 “올 들어 세계 휴대전화 시장 규모가 10% 이상 줄었는데도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 관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어려울 때도 사람을 자르지 않는 ‘사람 중심 경영’이 한국 기업의 장점”이라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이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로 연구되고 있다. 아모레, 신세계, 삼성전자, 포스코 등 많은 기업이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등 세계 유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훌륭한 경영 사례로 활용된다. 매년 해외 MBA 과정 학생 수백 명이 한국 기업을 배우러 직접 견학을 온다.

경영 전문가들은 강한 주인의식과 민첩성, 적응력 등이 한국 기업의 DNA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위기 상황에는 강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사업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8일 현대차가 처음으로 친환경차인 LPi 하이브리드차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바이오 시밀러(복제약) 분야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뜻밖의 실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모습이다. 2분기 실적이 ‘반짝 호황’이 되지 않도록 내실을 다지면서 다음 먹을거리를 준비해야겠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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