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불만 키우는 ‘희망근로’

  • 입력 2009년 6월 25일 20시 35분


충북 음성군청 직원 680명은 어제 월급의 7%를 희망근로 상품권으로 받았다. 희망근로 참가자들에게 줄 상품권을 대신 받은 것이다. 그 금액만큼의 직원 봉급은 7월 초 희망근로자들에게 현금으로 지급된다. 이렇게 되면 당초 6월분 월급 80여만 원 중 30%를 상품권으로 받아야 했던 440여 명의 음성군 희망근로자는 10%만 상품권으로 받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받게 된다.

사용하기 불편한 농촌 상품권

전형적 농촌지역인 음성군은 고령인구 비율이 높아 희망근로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의 노인층이다. 현재 음성군은 군내 상품권 가맹점 400여 곳을 모집했지만 노인들은 상품권이 낯설다. 사용법도 잘 모르고 사용기한이 3개월이어서 자칫 쓰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읍내에서 멀리 살수록 상품권 쓰기가 불편하다. 상품권으로 준다는 말에 불만이 많았던 터였다. 그래서 음성군청 직원들이 노인들에게 갈 상품권의 일부를 월급 대신 떠안은 것이다.

희망근로 사업은 저소득 서민층에게 절실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이다. 저소득층을 돕고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예산 1조7070억 원을 들여 이달부터 6개월 동안 전국에서 25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서민에겐 한시적으로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쓰기 어려운 상품권 지급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도 상품권의 문제점을 뒤늦게 인정하고 음성군과 같은 ‘상품권 사주기’를 권장했다고 한다.

상품권 아이디어는 애초에 설계도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저소득 서민층의 소리를 먼저 들었어야 했다. 급하게 서둘더라도 기업이라면 미리 수요조사를 했을 것이다. 희망근로 참가자들이 저소득층 서민이라면 상품권이 아니라도 30% 정도는 소비했을 것이다. 괜스레 상품권 발행 비용만 낭비한 셈이 아닌가.

하필이면 왜 6월부터 시작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한창 농번기라서 일손이 아쉬운 처지인데 많은 사람이 희망근로에 가버리는 바람에 농사일에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포도 재배가 많은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 일대에서는 포도 열매를 솎아줘야 하는 때라서 더 힘들었다고 한다. 포도 농가 일은 하루 일당이 6만 원 정도인데 청소를 한다든지 꽃동산을 만드는 희망근로에 비하면 훨씬 힘들어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촌 사정을 제대로 살폈다면 농번기는 피했어야 했다.

더 근본적인 불만도 있다. 한 택시운전사는 하루 열 시간 이상 힘들게 일하고 버는 돈이나 희망근로로 받는 돈이나 별 차이가 없다면 누가 땀 흘려 일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더군다나 부부가 함께 희망근로에 가면 더 많이 벌 테니 운전 일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단다. 1조7070억 원의 예산이 있더라도 무리하게 배정할 필요는 없다. 사정이 어려운 가정에 국한해서 써야 한다. 희망근로의 질도 문제다. 잡초 뽑기나 쓰레기 줍기 등 단순 취로사업이 대부분이라 생산적 복지라고 하기도 어렵다.

농번기 일손까지 빼앗아서야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0일 서울 구로구 관악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금년은 오로지 일자리 만드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려 한다”고 말하고 희망근로 사업을 확정했다. 경기가 살아나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 직접적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인 듯하다. 실무자들이 일자리의 질을 따질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달라져야 한다.

이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도 “하반기 경제운용의 초점을 서민생활 개선에 둬 우선적으로 배려하라”고 지시했다. 희망근로와 같은 사업을 지속하고 저소득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책을 펴라는 것이다. 뜻은 좋지만 실무 노하우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좋은 일 하면서 불만을 사지 않으려면 정책 수단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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