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부 교수 시국선언, 그 ‘陣營논리’의 편향성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에 대해 “서울대 구성원 전체의 의견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봉사하는 곳으로 시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교수도 상당수 있다”고 했다. 이 총장의 발언은 시국선언 참여 교수가 전임강사 이상 전체 서울대 교수 1786명 중 6.9%에 불과하다는 숫자의 문제만 지적한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다양성이 존중돼야 할 대학에서 정파적 색깔을 띤 일방의 시국선언이 전체 대학사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한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지금까지 70여 개 대학 4000여 명의 교수가 릴레이식으로 시국선언에 나섰고, 종교계 법조계 문인단체의 일부 인사도 동참했다. 표현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엇비슷하다. 시국선언문들은 한결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검찰 수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의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 성과를 무위로 돌렸다는 견해도 들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정부의 책임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인과관계를 무시한 논리적 비약이다. 민주주의 위기 주장도 지엽적인 부분을 확대·과장하거나 사회 현상을 포괄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단견(短見)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금강산 관광객 사살 같은 도발로 초래된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현 정부에 전가하는 것도 매우 편향적(偏向的)이다. 지식인이라면 사안을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한다. 특히 시국관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때는 논리성 합리성 타당성을 갖추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128명은 그제 지금까지 나온 대학가의 시국선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지성이 불편부당성과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들만이 공감하는 정파적 내용을 시국선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지성의 바른 표출이 아니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시국선언 참여자들에게 공개적 토론회 같은 소통과 대화의 장을 갖자고 제의했다. 일방적 선언보다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 상호 견해를 검증하는 것이 훨씬 지식인다운 모습일 것이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통제 불능상태에 빠져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지, 아니면 적절한 여과과정을 거쳐 화합과 통합으로 승화할지는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관련이 깊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분위기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시국선언의 주조(主潮)는 광장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한쪽 진영(陣營)의 격앙된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통합의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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