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샤먼의 후예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분향소마다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 향 대신 피어오르는 연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는 경호관의 말이 전해지면서 ‘담배 한 개비 헌정’이 조문 의식의 상징이 된 적이 있다. 나중에 이 경호관은 투신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한때 하루 두 갑 이상을 피운 애연가였던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담배 한 모금이 생각났으리라는 것은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기자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1학년 때 학점으로 학과가 정해진데다 워낙에 공부와는 담을 쌓아 전공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럽지만 ‘서당 개 3년’이라고 주워들은 풍월은 약간 있다. 우리 한민족만큼 담배를 즐긴 민족은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17세기 중반에 쓰인 ‘하멜 표류기’에는 “조선인들 사이에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조차 4, 5세에 배우기 시작하며,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가 극히 드물다”고 돼 있다. 담배가 전래되자마자 이토록 급속히 퍼진 것은 “병든 사람이 피우면 좋다”든지 “소화를 잘 되게 한다”는 등 약초로 잘못 인식된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밖에 다른 이유도 있다고 기자는 굳게 믿고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에서 비롯된 담배는 지금처럼 기호품은 아니었다. 담배는 추장과 샤먼으로 불리는 제사장의 전유물이지만 축제나 제사가 있을 때면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한 모금씩 피웠다. 샤먼이 담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은 신과의 소통, 즉 빙의(憑依)를 위한 영적 촉매로서 담배가 필요했던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금연 세태를 당시 인디언들이 봤다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족속들”이라며 손가락질을 했을 게 분명하다.

베링 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인디언과 뿌리가 같은 시베리아 북방 민족으로서 주어(主語)가 먼저 나오는 우랄 알타이어를 쓰고,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종교인 샤머니즘을 공유하고 있는 남북한과 일본에 유독 흡연자가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의 흡연율이 한국보다 높은 이유는 기독교화가 덜 된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는 한국에서 담배만큼 토착화에 성공했다.

체육계에서도 달리기와 축구 같은 유산소 종목을 제외하면 흡연에 후한 편이다. 1980년대 프로야구를 풍미했던 재일교포 장명부는 별명이 ‘너구리’였다. 완투라도 하는 날이면 3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두 갑은 거뜬히 해치웠다. 투수 대기석은 온통 연기로 가득 차 그야말로 너구리를 잡았다. 박찬호의 사부였던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야구 선수에게 근육이 풀어지는 술보다는 담배가 차라리 낫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체육계에도 금연 바람이 거세다. 관람석이 금연 구역이 된 것은 벌써 오래전 일이다. 몇 년 전에는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제약회사로부터 금연보조제를 협찬 받아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뇌경색으로 한 달여간 입원했고 아직도 몸이 완전치 않은 ‘국민 사령탑’ 김인식 한화 감독이 ‘흡연이 주 원인’이란 판정을 받은 것도 경종이 될 만하다.

선수들이여, 언제까지 샤먼의 후예란 사실만 앞세울 것인가. 선수의 흡연은 본인에게도 손해지만 야구팬, 특히 어린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담배 예찬론자인 기자도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이 자리를 빌려 금연을 다짐해본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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