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모종린]‘외국인 구분 정책’ 이대로 좋은가

  • 입력 2009년 5월 24일 02시 54분


우리는 외국인과 한국인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국인투자자, 외국인노동자, 외국인학교, 외국인학생, 외국인교수, 외국인선수 등 ‘외국인’이 포함된 많은 단어를 공식 용어처럼 사용한다. 위에서 나열한 단어 속의 외국인이 각기 다른 기준으로 정의된 사실을 알면 외국인과 한국인의 구별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 외국인과 한국인은 국적에 따라 구분한다. 외국인은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 한국인은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적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단순히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외국 국적을 가지면서 동시에 한국 국적도 가진 이중 국적자를 국민으로 취급하면서 외국인을 ‘한국 국적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한국 국적법은 이중 국적자에게 적대적이지만 이중 국적을 불가피하게 인정한다. 출생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가지면 여자는 22세, 남자는 병역의무 이행 후 2년까지는 이중 국적을 보유할 수 있다. 현행법이 이중 국적자를 항상 국민으로 대우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이중 국적자도 외국인 대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외국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으로 규정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이중 국적자를 외국인투자자로 대우한다. 또한 정부가 1월 외국인학교 법령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이중 국적자도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법령마다 ‘외국인 정의’ 달라

반면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항상 외국인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외국인 관련 법령은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외국인을 정의한다. 이에 따른 문제를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부모는 한국에 귀화했으나 자신은 미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의 예를 들자. 편의상 이 사람의 이름을 제임스라 하자.

한국에서 제임스는 학교 선택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시민이기에 외국인학교 진학을 희망했지만 부모가 한국인이므로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초중등교육법은 외국인학교 진학 자격을 ‘외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자녀’로 제한한다. 그래도 다행히 제임스 본인이 원하면 한국 초중등학교에 외국인학생 신분으로 다닐 수 있다. 평준화된 한국의 초중등학교는 외국인 자격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아서다. 그러나 한국 대학은 제임스를 외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등교육법은 외국인학생을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외국인’으로 규정한다.

제임스가 사회에 나와도 혼란은 계속된다. 제임스가 대학교수를 원하면 한국 대학에서 외국인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 한국 대학이 외국인교수를 ‘외국 국적을 가진 교수’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농구선수가 되겠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한국농구연맹이 외국인을 ‘본인이나 친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적이 없는 자’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제임스의 부모가 아들이 한국에서 농구선수로 활동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모국의 국적을 회복해도 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적이 있으므로 제임스는 외국인선수 자격을 획득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제임스 부모가 왜 한국으로 귀화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한국의 외국인 정책을 미리 알았다면 아들에게 딜레마를 주는 귀화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제임스 가족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임스 사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한국의 외국인 유치 사업과 국가브랜드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외국인 정책이 이처럼 혼란스러워진 이유는 정부 내부에서 상호 모순된 정책목표를 추구해서이다. 한편에선 외국인의 범위를 넓혀 외국인의 수를 늘리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국민정서를 내세워 한국계 외국인이나 이중 국적자를 외국인 처우 대상에서 제외하려 한다. 정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구분 정책 자체가 바람직한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규제와 특혜 동시에 줄여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의 편입을 심사하는 데 한국의 외국인 등록제가 문제가 되듯이 국제사회는 외국인을 명시적으로 구분하는 정책의 폐지를 요구한다.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을 야기하는 외국인 유치도 재고해야 한다. 그보다는 외국인 투자 및 거주 환경을 개선하여 외국인의 자발적인 한국 진출을 유인해야 한다. 한국계 외국인과 이중 국적자도 본인이 원한다면 외국인으로 대우하는 것이 성숙한 개방국가의 정책이다. 역이민이 급속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국민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국민의 수는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엄격한 구분은 구시대적 개념이다. 한국 법체계의 혼선이 보여주듯 외국인 구분 제도는 미래는 차치하고서라도 현재에도 유지하기 어려운 제도다. 세계화 선진국의 관행에 맞춰 외국인을 ‘외국 국적을 가진 자’로 규정하고 외국인에 대한 규제와 특혜를 동시에 줄이는 방안이 한국 정부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외국인 정책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안민정책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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