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反美장사와 허드슨강 호화아파트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미국 뉴저지 주 웨스트뉴욕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허드슨 클럽에서 창문을 열면 유유히 흘러가는 허드슨 강물과 멀리 맨해튼의 고층빌딩이 바라보인다. 아파트 경내에는 스파가 딸린 수영장과 대형 헬스클럽, 20석 규모의 소극장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미 스탠퍼드대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건호 씨의 LG전자 뉴저지 지사 복귀에 대비해 딸 정연 씨 명의로 계약했다는 아파트가 이 단지 안에 있다.

침실 3개짜리 복층 구조로 돼 있는 이 아파트의 가격은 160만 달러(약 20억 원). 미국 사회에서 웬만큼 성공한 교포가 아니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집이다. 대통령 아들이 이 정도 집에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은 2007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 가운데 40만 달러를 포함한 45만 달러를 계약금으로 지불했으며 이후 계약이 잠시 보류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은 40만 달러가 단순히 계약금이 아니라 잔금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미국에 안 갔다고 반미주의자냐. 또 반미주의자면 어떠냐”(2002년 9월 11일)라고 말해 대학생들의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도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용산 미군기지”(2004년 3월 1일)라며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곤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가지고,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 국민의 안보의식일 수 있느냐”(2006년 12월 21일)며 군 원로들을 비웃었다.

반미 정서에 기대 대선에서 이긴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아들을 2006년부터 미국에 유학시키고,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살 집을 물색해 주고, 허드슨 강변의 고가(高價) 아파트 매입을 위해 수십만 달러를 송금해 주었다니! ‘노짱’에게 열광했던 반미·친북 진영 일각에선 “배신당했다”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반미 상인(商人)’들의 이중적 대미(對美) 자세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국의 주적(主敵)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말한 강정구 전 교수는 장남이 미국의 대형 법률회사에 취업하고 차남은 주한미군 배속 카투사로 군 복무를 마쳤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를 주도한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부인이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5년간 유학한 적이 있다. 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애들 영어 때문에…”라며 자녀를 데리고 미국에 온 이유를 멋쩍게 설명하는 반미단체의 간부를 더러 만나봤을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과 ‘미국물 먹은 사람’을 욕하면서도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심리 상태를 일종의 ‘자기고양(自己高揚)적 편견(selfserving bias)’이라고 설명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당연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남에게 적용할 때는 나쁘고 잘못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초기 증세다. 좀 더 증상이 심해지면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주변 환경’ 탓을 하고, 남에게 비슷한 일이 있을 때는 ‘본성(本性)의 문제’로 돌린다.

‘사회적 프레임’으로 ‘박연차 게이트’를 바라볼 때 노 전 대통령의 죄목 1호는 ‘이 땅에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까먹고 정치 허무주의를 확산시킨 죄’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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