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기자의 digi談]작명에 성공하려면 이름에 문화를…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돼지인플루엔자와 멕시코인플루엔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인플루엔자A(H1N1)의 이름이 신종(新種) 인플루엔자로 정리되는 것을 보고 혼자 걱정을 좀 했습니다. “나중에 ‘신신종(新新種) 플루’, ‘신신신종 플루’가 등장하면 이름을 어떻게 붙이려고 저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고속인터넷 이름을 놓고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0년 전 10Mbps(1초에 10Mb의 데이터 전송) 속도의 비대칭가입자회선(ADSL) 인터넷이 등장하며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이름을 먼저 써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100Mbps급 인터넷은 ‘광랜(光LAN)’이라는 족보에도 없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지금보다 50배 빨라진다는 미래의 인터넷에는 광대역통합망(BcN)이나 차세대통합네트워크(NGcN)라는 난해한 이름을 발굴해 붙여야 했죠.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초초고속 인터넷, 초초초고속 인터넷이란 말을 쓸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동통신 분야는 기술을 세대별로 구분하는 통일된 이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이름 짓기 경쟁이 치열합니다. 3세대(3G)에서 4세대(4G) 이동통신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3.5G, 3.9G 등의 틈새 작명(作名)을 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든 기업이 좋은 이름을 지어 의미를 선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제록스와 지프는 기업들이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성공사례입니다. 복사기 브랜드인 제록스는 영어사전에 ‘복사하다(xerox)’라는 뜻의 단어로 등재됐습니다. 보통 4륜 구동 자동차를 의미하는 일반명사로 알려진 ‘지프(Jeep)’는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브랜드이죠. LG전자는 이런 성공사례를 본떠 자신의 TV 브랜드를 동사(動詞)로 만든 ‘엑스캔버스하다(ˇeksk¤nv¤s-hada)’ 등의 신조어를 만들려고 시도했습니다.

작명에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이름 안에 문화를 담았다는 점입니다. 이런 교훈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감상하는 MP3플레이어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뒤 정작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이름은 기기에 문화를 담는 데 성공한 애플의 ‘아이팟’이었습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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