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반칙과 특권의 연대기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2007년 6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입은 무척 바빴다.

그는 6월 2일 강연에서 대선후보들을 마구잡이로 깎아내렸다.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자 8일 원광대 특강에서 이를 반박하다 또다시 선거법 위반 경고를 받았다. 그러자 21일에는 선거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같은 달, 노 대통령의 집사 격인 정상문 대통령총무비서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 100만 달러를 받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다. 현직 대통령이 ‘거세된 정치인’이라며 헌소를 제기해 희생자 이미지를 연출하는 동안 부인은 청와대에서 당시 환율로도 9억2500만 원에 이르는 거액을 챙겼다.

2007년 노 대통령의 재산 신고액은 8억2067만 원. 부인이 전 재산보다 많은 돈을, 그것도 청와대 안에서 심복으로부터 받았는데 대통령인 남편이 몰랐다고? ‘소가 웃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반칙과 특권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취임 일성을 터뜨렸던 노무현 정권은 뒤로는 ‘더티 머니’를 챙기며 철저하게 반칙과 특권을 누린 5년이었다.

2004년 1월. 노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정치와 권력, 언론 재계 간 특권적 유착 구조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해 노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는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반칙과 특권의 부패 커넥션이 똬리를 튼 집권 2년차였다.

2005년 7월 29일. 노 대통령은 중앙언론사 정치부장 간담회에서 “스스로가 연루된 정치자금 문제, 불투명성의 문제, 이런 것을 청산하기 위해 정말 힘겹게 2년을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해부터 정상문 비서관이 ‘노 대통령 퇴임 후에 주겠다’며 청와대 예산에서 빼돌린 돈이 무려 12억5000만 원에 이른다.

2006년 8월 21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게이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바로 그달, 정상문 비서관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았다. 다음 달인 9월, 노 대통령 회갑 때 대통령 부부는 박 회장으로부터 1억 원짜리 스위스제 보석시계 2개를 선물 받는다. 그러고도 노 대통령은 그해 12월 “부동산 문제 말고는 꿀릴 게 없다”고 호언했다.

2007년 11월. 노 대통령은 “정경유착, 반칙과 특혜가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며 “성적이 나쁘지 않을 텐데요”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 아들인 노건호 씨와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박연차 회장을 찾아가 500만 달러를 요구했다.

2008년 3월.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서 15억 원을 빌렸다. 올해 3월 19일까지 갚기로 했으나 아직도 갚지 않고 있다.

‘진짜 거짓말쟁이는 자신까지 속인다’는 말이 있다. 1억 원짜리 보석시계 2개를 선물 받고도 ‘나는 깨끗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토록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부르짖을 수 있었을까.

‘시민’을 빙자해 폭력을 일삼는 촛불 무리에서, ‘참교육’을 내세우며 성폭력을 자행하는 전교조 소속 일부 교사에게서, ‘노사상생선언’을 했다고 징계하는 민주노총 ‘노동귀족’에게서, 공영과 민영의 이점을 모두 누리려는 MBC에서 노무현 정권의 어두운 유산을 본다. 자기마저 속이며 반칙과 특권을 누리려 했던….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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