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명자]푸른 5월, 고령화문제를 생각한다

  • 입력 2009년 5월 6일 02시 58분


21세기 국가 발전은 기술 산업 혁신으로 성장동력을 찾는 합리성 못지않게 공평한 분배와 복지정책을 펴는 감성 거버넌스를 필요로 한다. 그중 고령사회 대응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메가톤급 국정과제이다. 2002년 유엔의 마드리드 노인선언 때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은 “급속한 고령화는 지구촌의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특히 아시아는 고령화의 최전선으로 일본 한국이 장수국가 대열에 섰고 중국의 평균수명도 73세가 됐다.

우리는 노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최근의 연구 결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자외선 조사와 독성물질 시험에서 노화는 세포가 죽음을 향해 늙어가는 것이라기보다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고 늙은 세포도 젊은 세포처럼 증식 반응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이에 따라 똑같이 늙어가는 게 아니라 개인차가 커서 건강한 노인이 계속 늘고 있다. 일본은 80세 이상 노인의 80%가 건강하다고 한다. 최빈(最頻) 사망연령도 계속 올라서 우리는 82세, 일본은 92세이다. 사망연령의 표준편차도 6년으로 줄어 다 같이 오래 사는 세상이 됐다.

선진국들보다 더 심각한 구조

우리나라 인구의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속도가 빨라서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노인비율이 7%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으며 2018년에 고령사회(전체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율이 14% 이상)가 되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20% 이상)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낮은 출산율 때문에 상황은 더욱 꼬여 있다. 지역 편차가 커서 농촌지역의 3분의 2는 이미 초고령사회가 됐다.

더구나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사이의 격차는 선진국의 거의 두 배인 10년이고 어느 나라보다도 여자 대비 남자의 평균수명이 짧다. 노동시장에서 근속연수는 25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40년보다 15년이나 짧다. 고령화 문제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는 나이 등의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된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거의 10년 작업 끝에 도입했다. 1889년 첫 시행 때는 대상 노인의 나이가 70세였다. 그것이 1916년 65세로 조정된다. 1935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을 위해 사회보장법을 제정하면서 독일의 65세를 그대로 노인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통계에 따르면 1910년대 독일 남성의 기대수명은 47세였고 1930년대 미국 백인 남성의 기대수명은 61세(흑인은 49세)였다. 요컨대 사회보장제도의 틀 속에서 정해진 노인의 기준 65세는 평균수명이 60세 이하이던 시절의 산물인 것이다.

오늘날의 급속한 고령화는 노동시장은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예고한다. 이에 대응하려면 의료체계 고용체계 등 경제사회 인프라 전반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간의 대책은 노인을 사회복지 수혜 대상으로 보는 데 치우쳐 근본적 접근에는 미흡했다.

노인 4명 중 1명이 빈곤층이라는 게 아픈 현실이다. ‘효(孝)’의 개념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깊어만 가는 세대간 갈등과 단절의 골은 또 어찌할 것인지, 숱한 젊은이가 백수인 상황이라 고령인력이 경제활동에서 소외되는 문제는 뒷전에 밀쳐둘 수밖에 없을 것인지, ‘시한폭탄’이란 말이 참으로 실감난다. 고령사회 대책에 대한 방향은 잡혀 있다고 본다. 고령인력의 경력 재개발(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의 ‘이모작론’)과 건강 안전 면에서 고령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효과적인 틀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그 목표는 노인의 독립성, 문화생산성, 존엄성을 높이는 삶의 질 향상이다. 노화종합연구원 설립, 지역단위 지원체제 확립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기왕에 진행되고 있는 각종 연구개발 투자를 총점검하여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처럼 AT(Aging Technology·노화기술·서울대 박상철 교수)로 키우는 일은 별도로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녹색시대 동참시킬 묘안 없나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고령사회 대책도 사회적 인식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런데 고령사회는 아직 덜 급한 미래의 문제, 노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시급성 중대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여론조사에서 계층 지역 노사 이념 등 갖가지 갈등의 맨 끝에 ‘세대 갈등’이 꼽히고 있는 건 그만큼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떨어진다는 증거다.

근대사의 산증인으로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 과정에서 빈곤 억압 풍요를 두루 겪어 감성이 풍부한 ‘감동 예비군’(고려대 김문조 교수), 그 소중한 인적 자본을 어떻게 동력화해서 녹색시대 국가발전에 동참하게 할 것인가. 푸른 5월 가정의 달에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절실한 명제다.

김명자 객원논설위원, KAIST 초빙특훈교수

mjkim@gk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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