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우혜]구차한 비극, 상처받은 국민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盧 전대통령 소환을 보며

‘부패 없는 세상 만들기’

영혼 아닌 머리로 꾼 꿈

권력의 정점서 진실 잃어

이제 믿을 건 ‘법앞의 평등’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 골짜기마다 이야기가 들어 있고, 사람마다 사연을 지녔다. 사람이 한세상 사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지닌 이 세상에 대한 가치관, 보다 본질적인 말로 하자면 ‘꿈’일 것이다.

‘부패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거듭거듭 공언하고 남들을 향해 ‘부패한 자들’이라고 크게 질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초라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가득 슬픔이 몰려온다. 사람이 꾸는 꿈과 그가 살아가는 현실 사이는 왜 이렇게도 먼가.

아마도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공언했던 소신을 실현하는 데 진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갔다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꿈은 꿈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는 데서 그런 불행의 싹이 자랐을 것이다.

그런 모습은 또한 사람이 머리로 꾸는 꿈과 영혼으로 꾸는 꿈이 서로 다를 때 빚어지는 불행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문호 고골은 “사람의 영혼은 그가 즐기는 것에 들어 있다”고 갈파했다. 그 이야기를 바꾸어 해석하자면 우리가 즐기는 것이 곧 우리가 지닌 영혼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될 것이다. 즐기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각자 진심으로 즐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진심으로 즐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여러모로 특이한 통치자였다. 그가 집권했을 때의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그가 지닌 여건상 퇴임 후의 행적 하나만으로도 이 나라 대통령사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퇴임한 뒤의 상황까지 길고 깊게 생각해서 말 그대로 청렴하고 당당하게 처신하고 주변도 단속했더라면,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 역사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큰 의미를 지닌 생활이 주는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그가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즐길 줄 알았더라면 지금의 구차한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퇴임한 후의 생계는 전직 대통령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또는 그의 가족이 또는 그의 측근이 검은돈에 손을 벌렸다. 그렇게 확보한 검은돈의 힘으로 그가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일과 그 검은돈의 존재로 인하여 그가 입은 상처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수환 추기경이 깨우쳐준 ‘선한 꿈’ 지켜야”

문제는 제3자의 눈으로 보면 그리도 명명백백한 이런 이치들이 막상 당사자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서 한껏 권력을 누렸던 호사로운 경험이 사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을 방해하는 모양이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법의 심판에 의해 세상의 해악을 규제하고 제거해 가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착잡하게 바라보는 우리가 다시금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교훈이다.

그러나 법치에 대한 그렇듯 강력하고 절박한 기대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 아프게 남아서 빛나는 것이 있다. 이 세상을 향한 참되고 선한 꿈을 지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갈증이다. 지난겨울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맞으면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그런 거대한 갈증을 매우 크고 인상 깊게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은 그와 대척점에서 또한 우리 사회의 그런 갈증을 아프게 확인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송우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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