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도시 공존의 현장을 가다]<5·끝>독일 뮌헨 이자르 강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콘크리트 둔치 걷어내니 ‘홍수의 江’이 ‘시민의 江’으로

《‘위험했던 강물을 시민의 안락한 휴식공간으로.’

독일 뮌헨 시 남부를 관통하는 이자르 강을 개발하면서 당국이 내걸었던 표어다. 이자르 강은 사람을 위협했던 자연이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연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2000년부터 복원 공사를 벌이고 있는 현장을 둘러봤다. 》

유속 빨라 툭하면 범람

2000년부터 江재생 작업

시뮬레이션 거쳐 강변 복원

이젠 도심속 휴식처로

○ 시민에게 돌아온 강

알프스 산맥에서 다뉴브 강까지 270km를 흐르는 이자르 강은 뮌헨 도심 지하철 이자토르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8일 찾은 이자르 강 하류 둔치 옆에는 개나리꽃이 한창이었다. 봄소풍을 나온 듯 어른들은 병맥주를 강물에 담가 놓은 뒤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변에서 주운 자갈로 물수제비를 띄우거나 멀리 던지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파랗게 물든 둔치 잔디 위에 누워 책을 읽는 노인들과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평일 오후 4시 독일 제3의 도시 한복판의 풍경이었다.

강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되살아나는 강물이 주는 삶의 혜택이 예상보다 많아 놀라고 있었다. 토마스 헨셀 씨는 “작은 물새들이 되돌아 온 뒤부터 자명종 시계가 없어도 동 틀 무렵 집 위를 나는 새소리에 저절로 잠에서 깨어난다”고 말했다. 60대 노인들은 물고기와 곤충을 잡으러 강변으로 나온 학생들을 보고 “산업화 세대가 꿈꾸어온 것을 지금 세대가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 강바닥 넓히기 위해 준설작업

지금의 이자르 강이 주는 혜택을 보려고 시민들은 무려 9년을 기다려 왔다. 2000년 뮌헨 시가 강 재생 계획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강변은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다. 뮌헨시청 수자원관리국에서 11년간 일하고 있는 샤우푸스 다니엘라 씨는 “재생 전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던 강물은 유속이 빨라 지금처럼 맥주를 담그거나, 강물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특히 알프스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이른 봄이나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에는 강변 주민들이 강물이 넘칠까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한다.

홍수 걱정 없이 둔치의 콘크리트를 없애는 것이 강변 복원 공사의 1차 목표였다. 뮌헨 시는 먼저 수력발전과 운하로 쓰이는 ‘큰 이자르’ 강을 그대로 두고 보통 하천인 ‘작은 이자르’ 강을 복원하기로 했다. 다니엘라 씨는 기자에게 복원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도심에서 15km 떨어진 상류 지역으로 차를 몰고 올라갔다. 하류의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상류의 물길을 넓히는 현장이었다.

건설 현장에는 크레인이 둔치와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돌을 쌓고 있었다. 앞서 ‘V자형’으로 좁게 파였던 강바닥을 넓히기 위해 강바닥 준설작업도 끝냈다고 했다. 공사 현장 근로자들은 “상류의 모든 공사는 유속과 유량을 조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상류 강바닥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된 길이 70∼90m의 콘크리트 지지대는 급류의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지지대는 상류 지역의 100m 구간마다 설치됐다.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데도 급류가 수그러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눈이 녹아 흐르는 시즌이기 때문에 수량이 초당 40m³로 늘어나긴 했지만 초당 1100m³에도 강둑이 넘치지 않도록 설계돼 있어 홍수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설계 기준은 100년에 한 번씩 쏟아지는 폭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했다.

2005년 8월 공사 도중 대규모 폭우가 쏟아졌을 당시 위험수위까지 차오르는 급류를 보고 마음을 졸였던 뮌헨시청은 둔치와 강변에 다중 안전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둔치 안팎에는 급류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인공 호수와 유수지가 들어섰고 강둑 너머 마을 쪽에는 굵은 자갈로 채워진 폭 3m의 도랑이 잔디에 가려 있었다. 공사장에서는 이 도랑을 ‘숨은 안전장치’라고 불렀다. 만일 강물이 넘치는 경우 대피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철 패널을 강둑 안에 집어넣은 지지대도 이런 장치였다. 이 지지대는 강물이 불어날 경우 수압에 저항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한다.

○ 콘크리트 걷어낸 자리 자갈로 메워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도심 지역에 이르자 강변 곳곳에 쌓여있는 하얀 자갈이 눈에 들어왔다. 다니엘라 씨는 “콘크리트 둔치를 걷어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매년 수천 t의 자갈을 알프스 산맥에서 가져왔지만 지금은 그 양을 대폭 줄였다”고 했다. 복원 공사 이후 하류의 물길이 ‘S’자 형으로 바뀌면서 자연 퇴적 작용에 의해 생긴 자갈이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8km의 복원계획 구간 가운데 지금까지 공사가 끝난 부분은 7km. 하류 둔치에는 많은 지류와 작은 섬이 새로 생기기도 했다. 이런 지류에는 물고기가 지나갈 수 있는 길도 설치됐다. 뮌헨 시는 홍수 예방과 생태계 복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기 전 수많은 과학자들을 동원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다니엘라 씨는 “유량을 계산하는 수리학(水理學) 전문가와 홍수 확률을 예측하는 기상학자, 생태계 영향 평가를 하는 환경공학자들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고 귀띔했다. 이들 과학자는 이자르 강을 축소한 모형에다 실제 물과 모래를 올려놓고 토양의 침식과 생태계 복구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한다.

개발 반대 여론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복구 매니저로 일하는 클라우스 아르제트 씨는 “공사 초기 녹지에 심어진 나무를 뽑을 때마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며 “시민들이 마인드를 바꿔 타협점을 찾아야 도시와 강물이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뮌헨=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자연상태로 되돌려야 江과 도시 공존 가능”

뮌헨시 재건설 본부장

“강 개발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거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하면 강과 도시가 공존하는 길이 열립니다.”

이자르 강 복원 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공사를 진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랄프 불프 뮌헨시 도시재건설 본부장(사진)은 이같이 강조했다. 그에게 강 개발 뒷얘기를 물어봤다.

―강 개발 초기 주민 반대는 없었나.

“처음엔 반대가 심했다. 강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면 더는 둔치를 축구장과 주차장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개발 청사진이 나오자 이번에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은 ‘복원 과정에서 환경을 더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반대들을 어떻게 극복했나.

“복원 계획이 나온 직후에는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복원 이후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한 게 주효했다. 정책 결정 단계에서는 홍수 예방 시뮬레이션과 같은 기술회의를 자주 열어 바이에른 주 고위 공무원들과 의회 의원들에게 개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홍수 막는 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도심 녹지가 많이 파괴되지는 않았나.

“둔치 콘크리트를 없애고 강바닥을 넓히는 단계에서는 나무를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강둑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는 최대한 보호했다. 강둑 보강 작업에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무의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설치됐다. 특수 공법이 동원돼 예산이 더 들어갔다.”

―복원 예산은 얼마였고, 어떻게 조달했나.

“8km 강 복원 예산은 2900만 유로(약 508억 원)였다. 바이에른 주정부가 55%를 댔고 뮌헨 시가 45%를 마련했다.”

뮌헨=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