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윤종]경찰, 장자연 사건 모르쇠 일관…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경찰, 장자연 사건 모르쇠 일관… 말 못할 사정있나

“○○○ 기자, 기사 마감했습니까?”

“확인해 줄 수 없습니다.”

탤런트 장자연 씨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경찰서 기자실에는 최근 유행어 하나가 생겼다. 기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면 농담조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달 7일 장 씨가 자살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경찰은 수사 관련 의문점에 대해 “수사 진행 중인 사항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반복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오전 10시 반 브리핑에서도 ‘유행어’만 남발됐다. “수사 대상자인 언론사 대표 3명을 조사했나” “수사 결과 발표는 언제인가” 등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경찰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담당 간부에게 질문을 해도 “난 사실상 얼굴마담이라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14일 “반드시 실체를 규명하겠다”며 40명 넘는 인력을 투입해 수사본부를 꾸리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경찰은 유력 인사로 지적된 수사대상자에 대해 ‘친절하게도’ 본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방문해 조사했다. 경찰의 방문조사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장 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 씨는 4차례나 소환조사한 경찰이기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찰이 “수사 진행 상황을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이, 장 씨 리스트에 나온다는 모 언론사 대표들의 실명이 국회에서 거론됐다. 해당 언론사는 실명을 거론한 의원들을 고소했다. 모 은행장이 장 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와 연루됐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해당 은행이 반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칫 폭로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외부의 지적에 귀를 닫고 있다. 오히려 경찰 내부에서 “경찰 체면상 몇 놈만 팰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바퀴벌레 이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싱크대 뒤에 바퀴벌레가 있는 것을 알지만 싱크대를 뜯어내 박멸하지 않고 한 마리 튀어나오면 그것만 잡듯 한두 명만 본보기로 사법처리한 뒤 사건을 종결할 것이란 얘기다.

경찰은 곧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라면 수사 결과를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경찰은 3일 수사 대상자 실명과 혐의를 밝히겠다고 발표했다가 8시간 만에 비공개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경찰이 누군가를 봐주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로 의심을 키우기보다 밝힐 것은 밝히며 수사를 진행해야 할 시점이다.

김윤종 사회부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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