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현구]지식재산권, 우리경제의 성장동력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의지하던 1998년 세계적 컨설팅기관인 매킨지와 부즈앨런앤드해밀턴(BAH)은 두 건의 의미 있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매킨지의 ‘한국 재창조의 길’과 BAH의 ‘한국보고서’가 그것이다. 매킨지는 선진국과의 생산성 격차에, BAH는 지식 격차에 주목하여 당시 한국의 위기상황을 진단한 후 투입보다는 생산성에, 외형보다는 수익에 집중하고, 지식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의 추진을 제안했다.

두 보고서가 발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분석해보면 우리 제조업의 생산성은 여전히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과의 생산성 격차와 지식 격차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나의 사례로 삼성과 애플은 모두 삼성전자의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여 MP3 플레이어를 만들지만 옙(Yepp)은 130달러, 아이팟(iPod)은 199달러에 판매된다. 제품에 적용된 기술과 디자인 등 지식이 제품의 부가가치를 결정하고 이러한 부가가치 창출역량의 차이가 생산성 격차로 나타난다. 저비용의 중국과 고효율의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상황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미래에 작금의 국제금융위기보다도 더욱 위협적이다. 앞으로 세계는 기후변화, 자원 고갈, 물 부족 등 글로벌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지식과 기술을 소유한 국가가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러한 글로벌 이슈를 포함한 새로운 과학기술 수요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면 미래 글로벌 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당한다. 그러나 기업의 처지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개발(R&D)을 추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시장에서 철저히 보호받을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미래를 준비할 역량이 부족한 기업은 핵심 기술의 외부 의존도를 높여갈 수밖에 없으며 환경 에너지 의료 등 미래사회를 선도할 기술영역에서 선진국과의 지식 격차가 점점 더 확대되고 이는 곧 생산성 격차 확대로 직결될 것이다.

성장의 대부분을 무역에 의존(2007년 기준 75.1%)하는 우리 경제의 여건상, 선진국의 강화된 기술보호주의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식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산업계 과학기술계 학계를 망라한 16개 기관 및 단체가 참여한 지식재산강국추진협의회가 지난달 5일 ‘21세기 지식재산비전과 실행전략’을 선포했다.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던 이들을 흔들어 깨운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협의회가 발표한 비전에는 정부 기업 사회가 지식재산강국을 실현하기 위해 할 일이 명확히 제시돼 있다. 이 비전을 토대로 협의회는 앞으로 국부(國富) 창출의 주체인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식재산권 중심의 기술획득 전략을 추진하고 R&D 전문기업, 컨설팅, 금융 등 지식재산 서비스산업을 육성해 나가게 된다.

기술발전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식재산권의 특징을 살려 기업에 유리한 새로운 지식재산권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도 할 계획이다. 또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문화·사법·행정체계를 선진국형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지식재산 기반의 첨단 기업이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이번에 선포한 지식재산 비전과 실행전략이 실천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지식재산강국추진협의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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