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병일]퇴계-하서가 이은 영호남의 가교

  • 입력 2009년 3월 25일 02시 57분


주말인 22일 역사 동호인들과 함께 전남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을 찾아갔다. 대원군이 전국에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할 때도 살아남은 호남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이 서원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은 성균관 문묘에 모신 우리나라 선현 18분 가운데 단 한 분뿐인 호남인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가 보려던 서원이었다. 이번에 찾아가게 된 것은 한 달 전에 안동 도산서원에서 만난 분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지난달 19일 안동의 도산서원 경내에서 열렸던 기업은행 간부들의 선비문화수련원 입교식에 참으로 귀한 손님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필암서원 부설 선비학당장 박래호 선생과 장성군 관계자들이었다. 9월에 완공될 선비학당의 운영과 내년에 500주년을 맞이하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탄신 기념행사를 앞두고 일종의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분들은 도산서원 선비수련원 입교식에 맞춰 방문일정을 준비했는데 박 선생은 축사까지 했다. 정말 오고 싶었고 이 행사를 보고 싶었다면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인용하여 선비 수련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파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가치불변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체험하는 일이 온고(溫故)이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지나친 사욕에서 비롯된 오늘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지신(知新)이라고 했다.

도산서원에 모신 퇴계 선생과 필암서원에 모신 하서 선생의 500년 된 돈독한 우의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퇴계는 하서보다 아홉 살 위였으나 성균관을 함께 다닌 동기생이었다. 당시에도 두 분은 다른 유생과 차원을 달리한 도반(도학의 동지)이었다. 하서 선생은 퇴계 선생을 일러 “선생은 영남의 빼어난 인물이며 이백, 두보의 문장력에 왕희지, 조맹부의 필력을 지녔다”고 극찬했다고 한다.(이 표현은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베스트셀러 소설 ‘유림’에도 보인다.) 축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상도 안동에서 호남의 높은 선비로부터 이처럼 좋은 축사를 듣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듯하다.

퇴계 선생도 “(성균관에서) 교유할 만한 사람은 하서뿐이다”라고 칭송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산서원의 선비문화수련원은 이 나라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도덕과 윤리는 가난했던 시절보다 더 뒷걸음한다는 자성에 따라 설립됐다. 2001년 열린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 행사가 계기였다. 2002년부터 개인의 인격 함양과 공동체 의식 제고에 주안점을 두어 수련과정을 운영하는데 지난해까지 1만1000여 명의 학생 교사 학부모가 다녀갔다. 올해는 작년보다 목표를 두 배로 늘려서 7000여 명에게 수련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며 기업체와 금융기관 임직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개개인의 인격 함양과 공동체 의식 제고라는 일이 어느 특정한 지역과 계층만으로 가당키나 하겠는가? 호남의 거유를 모신 필암서원에서도 곧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니 정말로 기쁘고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날 찾아주신 분들의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올봄에 필암서원을 답방하겠다고 약속드렸다.

한 달 후에 찾아간 그날 그분들과 반갑게 만나면서 옛날 선현의 교유 및 앞으로 두 서원이 서로 돕는 문제로 좀처럼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봄비와 이제 막 피어나는 남도의 꽃들이 마침 자리를 함께했기에 더욱 좋았다. 옛 선현의 지혜가 가교가 되어 영호남이 한층 가까워지고 나아가 도덕의 물결이 전국 각지에 흘러넘치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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