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원책]검은돈 챙기는 패거리 정치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드라마가 쏟아진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국민을 열 받게 하는 저질 연속극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즌2, 시즌3 식으로 속편을 낼 모양이다. 이 드라마에서 전임 대통령의 형과 후원자는 사실 주인공이 아니다. 이런 유의 조폭 드라마는 영화 ‘대부’의 ‘돈 콜레오네’처럼 응당 보스가 주연이다.

대군 칭호를 받던 대통령의 형은 기껏 사람 눈을 피해 허름한 창고에서 돈을 챙긴 추잡한 짓을 했다. 증권사 매각을 주선하고 몇십억 먹은 일이 빙산의 일각이든 아니든 그가 주인공이 되기엔 뭔가 부족한 배역이다. 대통령의 후원자도 마찬가지다. 증권사 주식을 사두었다가 몇백억 차익을 삼켰다든지 주변에 방귀깨나 뀌는 자에게 보험 삼아 돈을 집어준 일은 다 흔해빠진 진부한 얘기다. 진작 주인공인 전임 대통령은 지금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다. 그가 ‘별 볼 일 없는 촌로’라고 했던 형님이 어떻게 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는지, 일개 후원자에게 수많은 파리 떼가 꼬인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나올 드라마의 핵심이다.

모든 돈에는 다 까닭이 있는 법이다. 까닭이 없는 돈은 검은돈이다. 황희 정승의 맏아들은 벼슬이 참의에 이르자 집을 크게 짓고 잔치를 열었다. 황희는 주연(酒宴)에 갔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선비가 청렴하여 비 새는 집에서 정사를 돌봐도 나라일이 잘될지 의문인데 거처가 이다지 호화스러워서야 어찌 뇌물이 오고 가지 않았다 하겠느냐. 나는 여기 잠시도 머무를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이든 그 아들이나 형이든 간에 땅 한 평 갈지 않고 장사 한 번 해보지 않은 백수가 호화생활을 하면서 황희의 말을 듣고도 찔리는 데가 없다면 어디 ‘흰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이 된다.

문민정부는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도덕성은 높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소통령이라 불리던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은 한보사태의 불똥이 튀어 검은 뒷거래가 까발려졌다. 그걸로 김영삼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졌다. 인사권조차 거덜 난 정권 말기의, 도덕성을 잃은 권력에 승복할 공무원도 국민도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은 ‘홍삼트리오’로 불렸다. 세 형제가 순서대로 법망에 걸려들었다. 그 아들들이 알선수재니 변호사법 위반이니 하는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 온 뒤에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정치판을 기웃거린 것이 이 나라 로열패밀리의 도덕 수준이다.

이 더러운 부패구도가 악습처럼 내려오는 일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통치구조 탓이 아니다. 마피아를 닮은 우리 정치판의 구조 때문이다. 아니 정치판은 진짜 마피아보다 훨씬 치사하다. 이념이나 정책이 없는 건 3김 따라서 패거리정치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의리도 명분도 없는 모습은 마피아라기보다 삼류 양아치 조폭 수준이다.

자칭 보수는 어차피 도덕성과 담 쌓은 인물이요, 진보라고 우기는 쪽은 헐벗은 이웃보다는 제 밥상의 부족함을 더 고통스러워한다. 이러니 보스가 권력을 잡으면 그 밑에 줄선 똘마니들은 임기 내에 한탕 해먹기 바쁘다. 그게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쯤 되니까 본격 드라마가 된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뇌물을 주고받는 일을 누군들 비밀리에 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만 밤중에 한 일이 아침이면 이미 널리 퍼지기 마련이다”고 했다. 권세를 갖고 있을 때는 입 닫고 있지만 어디가 썩은지를 세상의 쥐나 새조차도 다 알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저질 드라마는 계속된다. 이런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분노에 치를 떠는 일로 그쳐야 하나. 이 부패구도를 깰 방법은 바로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는 일뿐이다. 그건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전원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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