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원장, 대법원장의 존재 이유와 책임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대법원 진상조사단(단장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건 것은 재판개입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어제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토록 했다. 대법관이 법원장 시절 재판진행 개입 논란과 관련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조사단은 “법원장이 촛불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재판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라고 거듭 촉구한 것은 재판 진행 및 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발표문에서 “상당수 판사는 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이로 인해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사례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조사단은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는 일부 판사의 진술만을 받아들여 재판에 관여했다고 결론 낸 것이다.

신 대법관이 이런 조사 결과에 승복할지 의문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신 대법관의 진술을 충분히 듣고 공정하고 균형 있는 결론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청됐더라도 다른 판사들은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도록 당부한 것과, 양형통일을 위해 경험 많은 부장급 단독판사에게 촛불사건을 집중 배당한 것도 사법행정권을 일탈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신중히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대법원장도 이달 6일 기자들에게 문제의 e메일과 관련해 “그런 것 갖고 판사들이 압박받으면 되겠느냐. 판사들은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할 수 있는 용기들이 있어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 대법관이 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잘못이 있다면 그를 감독할 위치에 있는 대법원장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문제의 재발 가능성에 대비해 사법행정권 및 재판개입의 범위와 분명한 기준을 설정해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파문을 정치쟁점화하거나 진보 대 보수의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기회에 법관 경력 5년 정도의 단독 판사들이 주요 사건을 혼자서 재판하는 경력법관제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을 검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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